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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개인적인 견해일 뿐입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


 나는 86년생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서태지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난 세대라는 이야기다. 불과 몇 년 차이로 나의 청소년기는 SM과 DSP, JYP의 아이돌로 물들었다. 나는 개인의 전성기보다는 팬덤끼리의 대결, 흥망성쇠에 대 익숙한 나로서는 서태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유치원 때 ‘난 알아요’를 따라 불렀던 것이 그 기억이라면 기억이다.

이 때 말고는 기억이 별로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 수록 ‘서태지’란 존재는 단지 충격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린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보수적이었던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그것이 ‘착한 어린이의 태도’라고 믿었다.

 ‘서태지’를 받아들일 즈음이 된 때에는 서태지가 곁에 없었다. 그리고 전반적인 가요 자체에 대한 관심도 없어져갔다. 내가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2008년이 되었고 케이블방송에는 서태지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ETN은 D-Day까지 세어가며 연일 방송을 했고 원래 내용보다 포장이 훨씬 큰 여러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답 안 나올 얘기들만 무책임하게 던져 놨다. PD들이 모두 서태지 팬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방송에 직접 나오지도 않는데 계속 TV에 그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는 왜 불필요하게 서태지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쏟는가 의문이 들었다. 당연했다. 나는 그를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심코 '이번에도 듣도 보도 못한 음악 들고 나와서 그냥 퍼포먼스 좀 보여주겠지'하고 넘겼기 대문이었다. 그리고 예고했던 대로 싱글 발매 당일이 되자 TV에서는 서태지의 신곡이 흘러나왔다. 내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은 이것이었다.

 “좋은데?”

솔직히 가사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좋다.

 내가 그 동안 그를 어떻게 생각했든 간에 그의 음악은 단순하게 내 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

 내가 이유없이 서태지를 고깝게 생각했던 이유는 그 동안의 행보가 세상과 소통을 닫아버린 채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에 갇혀 귀를 막고 자신에게로 숨어버린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그러다 신곡을 듣고 어쩌면 진실은 다를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떠들어댄다고 해도 진실은 그 자신과 하늘만이 아는 것이겠지만.

 서태지는 자신이 과연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데뷔 무대에서 춤을 추면서 자신이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기성문화에 대한 반항의 아이콘이 되고, 문화대통령으로 불리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음악을,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기는 했어도 자신이 세상을 바꿔버리겠다는 다짐으로 무모하게 몸을 던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전 자료화면에서 예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별로 멋있지도, 노래와도 별로 관련 없는 이상한 짧은 드라마에 나왔던 것을 본적이 있다. 그들은 그렇게 평범한 신인 그룹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계속 혁신적인 시도와 신선함으로 누구도 가져본 적 없는 위치에 자리하게 됐다.

 사람들에게는 마음에 안 들면 말도 막 하고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마침 그 역할을 자기가 맡은 것 같다는 신해철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마침 음악적인 신화가 필요했고 그 주인공이 서태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서태지는 남들이 자신에게 맡긴 신화적 역할에서 진짜 자신과 계속 부딪쳤을 것이다. 그 신화적 역할에서는 계속 신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그 창조물이 뛰어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악적 방향도 팀 멤버들과 차이가 있었을 것이다. 팀 내에서 주도적인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한 갈등은 별로 없었을 테지만 시나위에서 음악을 시작한만큼 락으로 음악이 계속 움직이는 것도 막을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반면 양현석과 이주노는 은퇴 선언 후 둘 다 힙합 기반의 기획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음악적 감성은 서로 분명히 달랐던 것 같다.

 서태지는 계속 락 중심의 활동을 하면서 팀을 지속시키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춤을 추는’ 그룹으로 시작했고 하고 싶은 락은 밴드 중심의 음악이니 그들의 현실과 부딪쳤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과 상대로 매번 대결을 해야 했던 힘든 현실에 그는 일단 그의 음악에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그에게 은퇴는 마지막 도피처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오히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그를 더 신화적 존재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되돌아온 다음에 그는 익숙한 음악보다는 새로운 음악에 대해 열의를 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예전만큼 대중에게 강력한 영향은 아니었던 같다.

 그래서 지금 내가 서태지의 음악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새로워서가 아니라 그냥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그가 예전으로 회귀한 것 같다는 의견들도 있지만 그것보다 나는 서태지 자신이 자신의 신화 속에서 탈출하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신인이 서태지의 현재 싱글 앨범만큼의 퀄리티를 보여줬다면 과거로 회귀했다 등등의 이야기를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태지는 지금 신화라는 거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걸 가지고 폄하하거나 비난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에게는 객관적인 업적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스타는 누구나 거품 속에서 산다. 스타에게 고가의 제품을 협찬해서 판매의 증가를 노리고, 소장품이 비싸게 팔릴 수 있는 근거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관계이다. 단지 그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 거품은 대중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꼭 거품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진실이 아닌 껍데기로 살아간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도 있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 하나는 분명하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곡 소개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힘으로 앨범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앨범을 사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서태지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스스로가 신화였다가 석상들만 남은 채 인간들에게 격리되었던 모아이와 그는 같은 위치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스스로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타인과는 구별되는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영화 트루먼쇼에서 프로듀서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는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바깥 세상도 다르지 않아. 거짓말과 속임수는 다 같지. 하지만 내가 만든 공간 안에서는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트루먼은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 못 볼 지도 모르니 미리 인사 하죠.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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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락한 환경을 버리고 세상을 만나는 것을 택한다.

 자신을 둘러싼 거짓에서 빠져나와 진실을 만나고자 했던 트루먼처럼 그는 이제 현실로 걸어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는 자신이 만든 신화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을 새로운 신화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 생각과 같다면 세상을 향한 그의 제스쳐가 진심이길 바란다. 그럴 듯한 흉내가 아니라.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갑자기 그렇게 되기는 어렵겠지만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고 싶다. 신화가 아닌 서태지로 그의 모습을 만났으면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난 다음에도 그를 알지 못한다면 그를, 그의 음악을 믿지 못할 것 같다.

 사생활을 카메라 앞에 다 꺼내 놓으란 게 아니다. 그냥 은지원 말대로 ‘여자는 만나는지, 평소에 어떤 모습인지’ 정도는 알고 싶은 것뿐이다.

 아직도 이벤트를 하고 메시지를 담고 싶어 하는 걸 보면 그는 아직 자라지 않았다. 아직도 소년인 그는 계속 자라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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