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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얼핏보면 참 평범해 보인다. 그렇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갈 수록 그래서 더 삶의 특별한 순간을 잘 잡아내지 않았나 싶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바로 이렇게 변한다고 답해주는 것 같은 영화가 바로 500일 동안 썸머와 함께한 탐의 이야기다.

 

썸머, 이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탐은 '조금 예쁜 여자애가 오빠랑 비슷한 노래를 좋아한다고 해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진 마'라는 나이 어린 여동생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탐은 일방적으로 썸머를 '내 삶의 그녀'로 점찍는다. 사랑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말이 많지만 생각해보면 내 주변의 누군가가 무언가 매력이 있고 나와 맞는 점이 몇가지 맞는다고 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건 모두의 가장 큰 착각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작할 때와 한창 사랑에 깊이 빠져있을 때는 썸머가 사랑에 보이는 태도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도 않고, 혹은 신경쓰지 않는 척 하다가 결국은 썸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딪친다. 사실 그 전에 썸머는 탐이 썸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도록 행동을 멋대로 해 놓고는 그냥 친구로 지내자는 이해되지 않는 말을 내뱉기도 하긴 했다.

 또 큰 착각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절대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진실하지 못한 것 같아도 시작에 어느 정도 '필터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만.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약간 생각을 해보는 것도…




 시드와 낸시 중 자기가 시드라고 말하는 썸머를 보면 일반적으로 탐과 썸머의 행동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계속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것도 탐이고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남자 캐릭터는 쉽게 도망가 버리고, 여자 캐릭터가 미련을 가지지 않나. 그런데 썸머는 지나치게 쿨하다.

 썸머가 처음부터 한 마디도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이 모든 것이 예상된 문제였다고 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썸머도 분명히 자신은 고의가 아니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썸머가 한 행동은 탐에게 충분히 둘의 사이가 그냥 친구 사이라고 생각할 만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썸머가 둘 사이가 친구라고 생각한 거라면 그건 단지 썸머가 편한대로 그렇게 정하고 싶어한 것 뿐이다. (사실은 단지 썸머가 했던 행동들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이라서 이렇게 써 놓은 것일 수도 있다.)

 

탐, 당신에겐 그래도 결국 썸머가 필요했던 거야


 사랑에 빠져 웃느라 정신 없는 탐의 과거 모습이 나올 때마다

 '썸머 저저저….'

에다가 플러스 알파로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게 됐던 건 사실이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만 하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이 전혀 거리낌없는 과거에 지나지 않는 걸까. 물론 나도 그리 깨끗한 사람은 아니기에 꼭 사랑이 아니었더라도 주변의 누군가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지나볼 수록 생각해보니 고의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게 있다면 진심으로 미안해하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항상 이럴 때마다 나도 반성해본다. 혹시 그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썸머는 미안해하기는 커녕 탐을 만날 때마다 탐의 복잡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항상 변함없는 태도로 대한다. 탐은 절망에 휩싸였다가 또 아무렇지 않은 썸머를 보면서 괜한 기대를 하게 되고, 결국은 썸머한테 더 큰 상처를 받고 만다.

 탐은 의연하기는 커녕 썸머의 빈 자리에 허우적댄다.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름답던 예전 기억들을 혐오하게 되고 그 혐오는 탐의 변화까지 가져온다. 그 과정에서 탐은 썸머가 아니면 그를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없다고 단언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영화 초반의 '썸머 효과'처럼 단지 이 모든 게 우연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단지 썸머라서 사랑한 게 아니고, 탐이 바라본 썸머의 어떤 면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꼭 썸머가 아니었더라도 우연으로 묶였다면 썸머가 아닌 그녀 역시도 탐의 '내 삶의 그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썸머는 가장 아프지만 탐이 꼭 겪었어야 했던 필수 과정이었던 것 같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한 마디로 말하자면, 꼭 썸머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라도 '메리'든 '레이첼'이든 탐의 태클은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탐은 썸머와의 관계에 있어 단지 운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썸머가 내내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마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상처가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록 상처가 더 커지는 데도 안 그런 척하고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탐이 만약 썸머의 상처까지 알았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여자가 그렇게 계속 피하고 싶어하는 건 결국 자신이 다칠까봐 도망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탐은 그걸 모르고 그저 질주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있어 이해시킬 수 있는 이유가 없어도 이해가 될 때가 있다. 썸머의 문제라면 그 이해가 탐이 아닌 탐 다음의 남자가 왔을 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탐을 만날 때는 계속 거부하던 문제가 썸머의 말대로 그냥 아무렇지 않게 그 다음 남자가 왔을 때 '탁'하고 성냥불을 켠 것처럼 마음 속에 들어온 것이다.

 비록 궁상맞을지라도 탐 같이 실연 후에는 충분히 아파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탐 같이 실연 당시에 아파하지 않으면 오히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서 뜬금없이 이상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많은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충분히 아픈 게 오히려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다. (어째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추측성 멘트만 이어지는지….)




그렇게 가을은 온다


 모든 게 우연에서 시작하고, 우연에서 끝난다. 우연으로 시작한 모든 것에서 사랑하고 헤어지고 결국 또 다시 그렇게 만난다. 그 사람만이 전부라고 계속 혼자서 세뇌시키지만 돌아보면 꼭 그것도 아니다. 그렇게 아프고 나면 자라게 마련이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도 온다. 역시 언제나처럼 이 모든 게 가을이 오려고 그랬나보다 근사하게 이유를 붙여보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여름이 지나야 가을이 온다는 것이다. 탐처럼 나도 아직 여름이 필요한 것일까. 탐처럼 나도 여름을 지내고 나면 가을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Plus.
조셉 고든 레빗이 나온 영화를 연속으로 두 편 보고 나니 참 뭐랄까 아무튼 기분이 그렇다. 오랜만에 매력적인 배우를 본 것 같다. 후후. 이 영화는 주이 디샤넬과 조셉 고든 레빗이 나왔기 때문에 재미있게 본 건지도 모르겠다. 주이 디샤넬이 했기 때문에 썸머 효과가 이해될 수 있었던 것 같고 조셉 고든 레빗이었기 때문에 실연이 이해 되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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