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아바타를 봤을 때도 정말 이걸 보지 못했다면 큰 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셉션은 그 느낌 자체가 달랐다. 아바타가 익숙한 서사를 가지고 생각하지 못했던 환상적인 영상미로 모두를 사로잡았다고 한다면 인셉션은 영상을 떠나서 관객의 집중도를 높이는 밀도 높은(이 관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말들이 좀 많은 것 같지만) 이야기를 가진 동시에 인간에 대한 심도깊은 관찰로 본질을 꿰뚫어본다.

 

완전한 새로운 세계

 아바타도 그랬지만, 아바타보다도 인셉션은 보고 나서 입장이 정말 명확하게 갈리는 듯 하다. 아바타는 솔직히 말해 전혀 새로운 세계인 듯 했지만 그 안은 언제나 봐왔던 익숙함이 있어서 모두가 쉽게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볼 수 있는 하나의 판타지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셉션은 꿈을 통한 새로운 법칙과 세계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우리가 러닝 타임 동안 그 꿈 속에서 보내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드림 머신이라는 소재와 생각을 훔치려는 사람들, 또 항원 항체 반응처럼 의도하지 않았지만 무섭게 맞서는 무의식,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는 신호인 '킥'까지 이 세계는 너무도 견고해서 원래부터 있었던 것 같지만 그것조차 나도 인셉션 당한 건 아닌가 싶게 모두가 새로운 세계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그 대신 새로운 세계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꽤 많은 것을 관객 혼자서 깨우치고 집중해야하고 그런 것에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면 돌아서게까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것은 이래서 그런 것이고, 저것은 저래서 그런 것이고 설명으로 가득 채웠다면 이 영화가 아니라 설명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영화를 볼 때 전체를 보기 보다는 한 가지 특징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거나 아니면 그것 하나로만 기억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논리적인 흐름에 대해서 말하거나 따지거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어찌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분석까지 하는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말을 덧붙일만큼의 능력 자체가 현저히 모자란 탓이 큰 것도 있다. 그리고 그런 면에 대해서는 나 말고 더 훌륭한 사람도 많고, 나는 일단 내가 보는 만큼만 쓰기 때문에 이번에도 내가 느낀 것에 대해서만 쓰려고 한다.

 

나도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영화처럼 꿈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나도 이런 단순한 생각을 한 적은 많다. 내가 과연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지금 현실을 가장한 가상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잠을 자고 그 때 꿈을 꾸었다고 해서 지금 삶이 꿈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런 생각들 말이다. 물론 삶에 대한 자잘한 변수가 터질 때마다 그것을 거부하고 싶어하는 방어적인 측면에서 그런 생각이 나올 때가 가장 많았던 건 맞지만 과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 과연 그 진짜의 삶일까 가끔 헷갈릴 때도 있다. 내가 이 삶을 믿고 싶지 않기 때문인가 싶긴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내가 평소에 품었던 일반적으로는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이런 생각들에 대해 더욱 더 의심을 얹어줄만큼 이게 영화인 건지 내가 이 속에 있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영화 상에서는 토템이라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리고 코브에 대해서 너무 필요 이상으로 공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는 꽤나 진지하게 다가왔던 정서적 측면
 
 많은 사람들이 코브의 무의식에서 맬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 일반적인 클리셰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꼭 엄청나게 특별한 트라우마라고 해서 곧 그것이 캐릭터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또한 Holmes와 Rahe의 스트레스 측정도구에 따르면(정확히 기억 안 나서 찾아봄) 사랑하는 배우자의 죽음이 인간이 사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스트레스로 평가받는다. 자식의 죽음이나 부모의 죽음이 더 클 것 같지만 가족의 죽음은 스트레스 순위 상 의외로 그보다 하위를 차지한다. 상대적일 수는 있지만 죽음 자체가 엄청나게 힘든 상황인데다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나누었던 상대라면 그 상실은 언제까지나 채울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잃어버린 것을 바로 똑같이 채울 수는 없다.

 나는 코브의 무의식 속에서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맬을 코브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계속 맬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나도 코브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감지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게 아니라 그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바로 나와 같은 그것이었다. 나도 코브처럼 이미 끝난 사실인데 혼자서 계속 그 사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또 이미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 적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 무의식 속에도 맬과 같은 존재가 있지는 않을까.



 가면 갈 수록 어떤 사실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 그 자체보다 그 사실이 마음 안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 끝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이 내 마음 안에서 진행 중이면 그 사실은 절대 끝난 것이 아니다. 어떤 현실 자체보다는 그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 현실이 진정으로 어떠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가끔은 이런 것 때문에 많은 속임수와 음모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인셉션도 가능한 것일 것이다. 피셔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라 피셔가 아버지의 죽음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틀어줘야 할 것인가가 인셉션을 결정하지 않는가.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모든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현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아무래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 영화를 위해 많은 조사를 했을 것 같다. 특히 무의식을 위해서는 프로이트 등등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의 이론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코브의 경우에는 무의식에 '맬'을 감추고, 피하고 싶어했지만 우리 모두가 의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편하게 살기 위해서 자신의 무의식에다 피하고 싶은 많은 것을 묻고 살아간다. 나도 코브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내 무의식 속의 꺼림칙한 모습들과 마주하는 노력을 해야겠다. 상처를 피하기만 해서는 오히려 그 상처가 더 커질 것이고, 아프지 않고 기쁘려고만 하면 오히려 절대적으로 진정한 즐거움에서는 멀어질테니 말이다.



배우들과 캐릭터의 하모니

 아무래도 인셉션에 나온 배우들을 보자면 주인공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단연코 돋보인다. 원래 나란 사람은 주인공보다 주변 조연에 집중하는 성향이 강하지만 이번 만큼은 주인공을 인정해야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원래 대단한 배우이긴 했다. 그가 캐릭터에 놀라울 정도로 몰입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힘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무언가가 그를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마음에 걸리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하자면 캐릭터를 확실히 보여주는 건 맞지만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의 연기를 보면 무언가 연기에 기름기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예전보다 그의 연기에서 과한 기운이 빠진 것 같다. 아직은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더 많은 기대가 된다.

 또 조셉 고든 레빗과 엘렌 페이지도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다 보여주었고, 톰 하디와 딜립 라오까지 모두가 연기로서도 한 팀이 완벽히 된 것 같았다. (조셉 고든 레빗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매력에 대해서만 말할 듯 하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쿨럭.)

 그리고 또 '맬'을 완전하게 소화한 마리온 꼬띨라르도 절대 빼놓아선 안 될 존재다. 코브의 무의식 속에서 상처 자체로 살아가는 맬을 이렇게 완벽하게 소화할 배우가 또 있을지 나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눈빛 속에서 원망과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고 프랑스 배우 특유의 신비스러움이 선이 굵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비교해봐도 가볍지 않아 보였다.

 갈 수록 헐리웃에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늘리고 있는 와타나베 켄도 그만의 중심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아마도

 이렇게 좋은 영화에게도 호불호가 갈리고 실망의 목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이미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이 가지는 네임밸류가 더 이상 단순한 놀라움으로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자도 아니고 이 영화가 모두에게 절대적인 답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내 인생에 있어 최고의 영화라고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이 영화가 내가 영화를 보고 나서 실제로도 호흡 곤란을 주었고, 그 후 한 동안 가슴이 떨렸고, 이런 영화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것만은 말할 수 있다.

 

아직 인셉션에 대해 이해가 안 된 부분들이 있다면 이 곳을 클릭해 보시면 좋을 듯.

http://shougeki.egloos.com/2651159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