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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전략 보고서 - 8점
이영작 지음/나남출판

 이 책은 서두에서도 여러 가지 염려를 밝히고 있다. 일부 현존하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 존칭을 생략하고 부정적인 내용을 직접적으로 밝히고 있는 등의 문제다. 이 책 자체가 '김대중 대통령'을 위한 선거전략 보고서였으므로,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이 대통령 선거전략 책 중에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끝까지 읽어보았다.

 참 재밌는 것이 저자 이름이 '이영작'인데 英作이다. 내 식으로 해석해보자면 영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데 어찌보면 맞는 듯 하다. 사람은 정말 이름대로 되는가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이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선거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전까지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감성에 의지한 정치 경쟁이었다면, 지금도 그것이 완벽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후보자들의 자질경쟁으로 바뀌었고 그 바탕에는 경마식 여론조사가 아닌 연구를 위한 여론조사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실제로 대통령으로 당선 되기 전까지 어떻게 이미지 메이킹을 할 것인가 부터 어떻게 어필해야 표가 자신에게 올 것인지 얼마나 연구하고 노력했는지를 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 무서운 것은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클린턴이 일부러 게이 커뮤니티에게 홀대를 받아 자신을 보수화한 이유는 게이 커뮤니티가 클린턴에게 등을 돌려 밥 돌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등은 돌리되 제 3의 후보에 흡수되거나 하지, 전혀 다른 상대방 후보에게 가지는 않는 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 게이 커뮤니티가 등을 돌리는 대신 보수적인 성향의 표를 모으는 편이 더 크다는 것이다. 클린턴은 자신을 보수화하는 방식으로 승리를 한 것이라는데, 또한 이것은 언제나 옳은 결정이 아니라 정황이나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외로 사람들은 도덕성이나 기본적인 면이 투표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따른 면에 따라 요건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선거는 모든 사람의 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많은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 바로 자신의 파이를 가장 넓힌 사람이 되는 것이기에, 일반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되고 가장 영리한 방법으로 해왔다 하더라도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그리고 선거에는 자신의 이권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이나 냉철하지 못한 사람은 선거에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 책을 읽다가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이 책이 시간에 따른 순서로 편지글로 되어있어서 좀 더 차분하게 분석하고 정리해서 책이 나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과, 비록 저자가 통계학자로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었던 연구를 위한 여론조사의 선거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성과가 있었지만 그것만을 연구한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또한 보수이든 진보이든 너무 편향된 측면이 없지 않았고, 저자가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해 너무 개인적인 관점을 내놓은 점, 여러 예시들이 미국이나 일부 국가밖에 없었다는 점 등이다.

 이미 예전부터 로버트 레드포드의 '후보자'란 영화를 보고 '선거라는 것은 본의 아니게 조작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경험을 쌓으려던, 그리 실제로는 좋은지 의심되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당선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에는 그저 기대감을 심거나 두려움을 심거나 하는 것보다는 실제이기 때문에 속이고 당선되었다고 해도 그 누구라도 '진심'이 없다면 무엇은 영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명석한 전략이 먹혀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전략이 아니라 속임수인 것이 아닐까. 또한 아무리 훌륭한 전략가들이 있다해도 후보자 자체가 잘 결정하지 못하거나 혹은 전략가들의 말을 담아 듣지 않는다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아무리 복잡한 것 같지만 '당위성'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당위성이 없으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나는 이력서에 담은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무언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나. 내 이력서에는 메시지가 있었던가 하고 전혀 다른 얘기같지만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마음 아프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이다. 순수한 마음은 간직하되 순진한 마음은 버리고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 한 걸음 다가서야겠다.


보태기=

 특히 이 책을 떠나 우리나라 전문가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바로 '미국식'이라든가 '선진국식'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그리고 미국이 너무 중심적이고 다른 나라는 별로 보지 않는 것처럼도 보인다.) 우리나라는 컴플렉스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일제의 제도가 맞지 않다고 해서 미국이나 다른 국가의 제도를 바로 적용하면 문제가 없을 것인가? 그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연연해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 상대적으로 선진국이 될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우리나라가 너무 빨리 온 길을 이제 차차 다져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모든 것을 '빨리' 이뤄왔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모든 것이 '빨리'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는 현실적으로 빠른 길을 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 누군가가 빠른 길을 주장한다면 이제 그것은 허상이다. 이제는 느리더라도 올바른 길을 가야할 때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바꿀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 왜 우리에게는 우리의 길은 없는 것인가.

 다른 나라에게 우리나라가 이만큼이나 달라졌어요 하고 징징댈 것도 없고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별로라고 말할 것도 없다.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난리인지. 지금까지 다른 나라가 직접적으로 '우리나라는 최고다'라고 말했던가 생각해보자. 우리는 은유적으로 그 나라가 최고임을 깨달았을 뿐이다. 문화든 뭐든 경제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원래 있었는데 그런 인프라가 생기다 보니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가 좋은 것만 보거나 아니면 나쁜 것만 보는가. 상황을 별 다른 이유 없이 긍정적으로만 보거나 '그럼 그렇지'하고 냉소적이다.

 밍숭맹숭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큰 일을 위해서는 최선의 답이 중요하지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는 답이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최선은 있지만 최고의 답은 없는 것 같다. 더 나아지는 것이 있을 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없다. 모든 방법에는 정답과 문제가 함께 있고, 정답의 파이를 늘리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 방향이 옳고 저 방향은 틀리고 하는 것은 모르겠다. 어쨌든 간에 항상 최선의 답이 있을 뿐이다.



왠지 모르게 쫓기듯이 쓴 느낌이다. 글 구성이 조금 약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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