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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나름대로 깁니다. 긴 글이 힘드신 분들은 다른 글을 읽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전에 처음 첫 회사에 입사했을 때, 그 때는 참 대리가 되고 싶었다. 이름 옆에 아무것도 없는 어정쩡한 시기를 지나 그래도 대리라는 이름이 붙여지는 게 좀 나을 거란 참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지금 대리가 되고 나서 꽤 많은 해가 지난 것 같은데, 그저 대리가 되기를 바랐던 시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진 것을 느낀다. 지금은 대리로 불리나 대리로 불리지 않으나 별로 상관 없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가끔 뜻하지 않게, 남들이 다 본 거 들은 거 나중에 뒷북을 치곤 하는데 요새 지대넓얕 정주행을 하면서 어느 편에선가 독실님이 그런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주변 친구 중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있는데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나는 위로 올라가기는 힘들겠구나'하고 바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위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 보다보면 그걸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는지 아니면 내가 할 수 없을지 느낌으로 알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포기를 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나도 그 말을 듣고는 어느 정도 이상하게도 수긍이 되었다.

왜 수긍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위에 계신 분들에 대해 논해야 할 것 같고 그에 따라 관련된 표현을 많이 쓸 것 같은데, 편의상 그런 분들을 '대선배'로 지칭하도록 하겠다.

일반적으로 '대선배'라고 하면, 그 세대가 보이는 특성인지 아니면 그런 위에 갔기 때문에 보여지는 특성인지 헷갈리지만, 대부분 어느 정도 비슷한 특성을 보여 주는데, 그 특성을 내가 가질 수 있을지 없을지에 따라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 지가 결정되는 듯 하다.

혹시 회사를 안 다녀봐서 잘 모른다면, '대선배'일수록 태양의 '나만 바라봐' 가사와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된다.

'내가 바람 피워도 너는 절대 피지마-'

예를 들어, 내가 실수 해도 너는 실수 하면 안 된다 이런 것과 더불어 내가 실수한 것도 네가 채워 줘야 한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는 어디까지나 내 경험 상에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다양하게 나뉠 수도 있지만 저런 경우가 많았거나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저런 경향이 많아진다. 본인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하지 못한 그런 것 말이다.

왜 대선배들 중 그런 사람들이 많은가 곰곰히 생각해봤다. 승자의 뇌라는 책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었지만,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행동할 수록 내가 포기해야 하는 가짓수가 적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본인이 편한 것만 생각하고 그 위주로 방향을 결정해 버린 후에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를 무시해버리고 둔감해지면 주변을 여러 가지 살피고 고민하고,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려하는 등 부차적인 것들에서는 해방이 되니까 본인이 생각했을 때 더 고난이 적은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란 원래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극복하려고 여러 상황에 대해서 무뎌지기 마련인데 더욱 더 특화된 방향으로 무뎌지는 것 같다.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고 아는 척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고, 그러는 동시에 본인이 제일 힘든 것처럼 불평해도 아직까지는 그런 사람의 많은 수가 대선배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인 것 같다. 그렇게 해도 본인이 불이익을 받을 일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환장할 노릇인게 저런 것을 다 완전체로 가진 대선배들도 있지만 일부 몇몇 특성만 애매하게 가진 경우까지 스펙트럼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아까 말한 태양의 나만 바라봐란 곡의 화자처럼 보통 대선배들은 내가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거니까 후배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은 꺼리는 극한의 정서까지 내비치고는 한다. 그러나 대선배라는 존재를 떠나 사람이란 사회적 동물이라 아기 때부터 꼭 배고파서가 아니라도 애착을 중요시하고, 양가 감정이라던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면들이 꽤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쪽으로 일관성이 없다는 것은 그러려니 해야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저렇게만 해서는 정말 아무도 곁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업무 성과가 뛰어나거나, 어느 정도로는 챙기거나, 또 어느 한도에서는 관용을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항상 보이지 않는 선을 본다.

일단 저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 대선배들로 상대적으로 많이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현재로서는 나도 저런 사람이 되는 것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내가 아는 누군가는 너도 버티려면 저렇게 되어야 가능하다는 말도 해 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조직이나 회사의 목표를 위해서 개인의 희생을 잘 이끌어 내거나, 혹은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그 중 누군가를 제외시키거나, 그러면서도 뻔뻔해서 마음에 금이 잘 가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쓸데없어 보일 지는 몰라도 본의이든 아니든 현재로서는 일이라는 것이 나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에 주로 집중하는 내가 다소 서글프단 느낌도 있었지만 요새 들어 계속 어느 샌가 이런 생각에 빠지곤 한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더 많지만 시간이 가면 갈 수록 무서운 게 때로는 대선배들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많아지면서 더욱 더 걱정스러운 부분들이 많다.

이전에 잘 모를 때는 이러저러한 일이 있으면 그런가보다하고 정신없이 보냈지만 이제는 더 많이 아는 것에 비해 갈 수록 기민함은 떨어져가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대선배의 입장에 내 입장을 대어보는 횟수가 점차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쉽게 말해서, 내가 과거의 나 같은 사람을 그것도 매우 당찬 성격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만나 '사실은 당신이 하는 게 참 여러 가지 구려요' 이런 류의 말을 듣게 된다면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구구절절마다 백퍼센트 맞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내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한다. 나는 이럴 때 포용적인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또 관용을 보여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관용이 과연 어느 정도여야 호구로는 보이지 않고 또 기분 상하게는 하지 않는 적정선일까?

막말로 나랑 그 동안 일했던 후배들이 마음 속으론 그냥 나를 별로라고 생각했는지, 또는 자기는 안 그런 지 안다며 치를 떠는지 조차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막연하게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그냥 실제로 나오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나 혼자 상상은 하지 말자고 나를 다독이는 것 말고는 할 바가 없다. 그래서 그 대선배들도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반대를 하면서 반대를 신나게 할 뿐 아무런 대안이 없을 때인데 내가 불편해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반면에 이에 대해 명확한 해답은 내기가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라 더욱 혼란스러운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불편하게 여겼던 수준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소망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되는 건 생각보다 정말 힘든 것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감당해야 할 가짓수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내가 대선배들과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게 가장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사람이 되기는 싫고, 그런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 모든 걸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딜레마인, 그런 상황 속에 서 있는 듯 하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이 완전하게 모두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결심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대선배가 아니라 하더라도 눈치를 보자는 것이다. 내 경험상, 대부분 대선배가 되면서 눈치를 봐야하는 대상의 수를 매우 줄이기 때문에 그런 대상이 아닌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에 대해서 혼자 관대해지는 것이 원인이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해 당당한 것과 다른 사람에게 염치가 없는 건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구분이 갈 수록 어려워지는 모양이다.

이렇게 눈치를 본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그냥 내 일방적인 기준일 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대선배들에게 눈치를 보는 만큼 후배들의 눈치도 본다면 그래도 좀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물론 지금 내가 대선배들에게 보는 눈치와 100% 같은 정도로 눈치를 보지는 않는 것 같다. 항상 최선을 다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사람이기 때문에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일반적인 대선배의 길을 가지 않고 항상 내가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 이렇게 계속 하는 게 정답인지 나 자신도 약간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게 요구하기 보다 내가 양보를 하거나 그럴 때도 생기기 마련이다.

어차피 내가 하는 행동은 생색을 낼 수도 없고, 아니 생색을 내서는 안 되는 행동인데다가 이렇게 한다고 누가 알기는 하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정확한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나는 일반적인 대선배의 길을 가는 게 더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야겠다는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한 편으로는 내가 바꾸기는 힘들 것 같고 이런 것은 자기 위안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우리 나라의 장점이자 단점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것인데, 앞으로 인식이 바뀌어서 유럽처럼 교수님한테도 교수님 이름으로 서로 말 놓고 지내는 그런 시기가 도래하면 그 중에 내가 가장 그나마 얘기할만한 선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은 허황된 상상을 가져본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그러한 대선배가 되기 위해 어떻게 회사에서 버틸 것인가.

그 동안 겪어보니 어떤 면이든 회사 다니는 걸 좋아해야 한다. 대선배들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때 그들은 필요 보다 본인이 즐기는 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업무 자체를 즐긴다던가, 아니면 지위가 주는 자존심 또는 자신이 속한 그룹이 다른 그룹보다 돋보인다던가 한 가지 이상은 어떤 의미에서든 회사 다니는 것에서 찾는 즐거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회사도 몇 번 옮겨 보면서 든 생각이 내가 회사 다니면서 즐겁다고 말 할 게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요새 깨닫게 된 것이 난 특별히 진취적이라기 보다는 나도 모르는 새 책임감으로 끙끙대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건 '내 자신의' 동력이 되긴 힘들 것 같다.

또 아까 일장 연설을 한 후배와의 인간관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심지어 꿈의 회사라는 둥 엄청나게 좋은 회사라고 하더라도 회사라는 구조가 개인이 개인을 착취하게 디자인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선배들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개인의 결정도 있지만, 회사에서 요구하는 상황 속에서 작은 것부터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본인 나름대로 이것이 최선이라고 여기며 이 결정 저 결정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일 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꼭 괘씸죄에 걸려서가 아니더라도 업무적으로 능력이 없거나 혹은 능력이 모자라지 않아도 상대평가를 당하게 되어 있으면 그 누군가는 회사라는 조직에서는 버틸 수가 없다. 회사의 태생적인 구조 자체가 회사에서 원하는 무엇인가를 어떤 이유로든 달성하지 못하면 자의든 타의든 계속 그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

당연한 소리처럼 보이겠지만 능력이 모자라서 더 이상 업무를 할 수 없게 된 누군가도 단지 정확한 방법을 모르고 노력 했을 수도 있는데, 회사에서는 성과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성장을 기다리기 힘든 구조로 되어있는 것 같다.

쉽게 말하면 내가 그래도 회사 다녀서 못 하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지원하지 학교 다닐 때 아마 내 미래는 일 못 한다고 욕 먹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학교 생활을 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게 아닌가. 다들 최소 20여년 이상을 보내오면서 그런 미래를 맞이하려고 준비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나도 일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일 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감정적으로 격해지곤 한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회사 안에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경우도 꽤 많은 것 같다. 회사라는 구조가 가면 갈 수록 가혹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생존에 있어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대부분 열심히 준비를 하며 살아왔을 개인 한 명 한 명에게는 이게 합당한 대우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혹한 방침을 내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혹은 그 방침을 당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서 대부분 전자를 택하는 게 점차 당연해지는 모양인데 나는 갈 수록 느껴지는 이 회사라는 곳의 본질 상 어찌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큰 꿈을 가지고 나는 이 조직에서 최고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하고 자기 자신을 몰아 붙이면서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나를 되돌아보면 항상 내게 맡겨진 일을 해내는 것 이상으로 생각할만한 겨를이 없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선택을 받아야 한다면,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을지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선택받을 만한 것이 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항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계획을 짜고 싶은데 정말 살아 남으려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해서 그것을 성취해야 하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싶다. 아니면 심지어 그렇게 성취한 게 없더라도 성취한 것처럼 잘 포장해야 하는데 그것에 내가 그리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이런 글을 쓰면서도 대선배 중 한 명이 이 글을 보고 내가 누구인지 안다면 나에게 꼭 좋은 태도를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막막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살아가면서 느낀 건 어차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계속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정말 버티는 길이라는 것이다. 지금 10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해온 걸 들여다보면 남들이 지친 시간에도 어떻게 보면 멈출 수 없이 한 해 한 해 보냈다는 것인 것 같다.

오히려 머리가 좋고 탁월한 친구들이 일상의 평범함에 더욱 쉽게 지쳐버리는 것을 보면서 억지로라도 있어야 했던 내 상황이 더욱 버티게 해 준 게 아닐까 하고 정신승리를 해보곤 한다. 꼭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가 아니어도 업계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 대부분 보면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걸 자주 보는데, 가면 갈 수록 내가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인가에 대해서 꾸준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효율적인 방법을 모른채로 노력만 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못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선을 넘고나면 무엇인가에 대해 질리지 않고 꾸준할 수 있는 것이 진실한 능력인 것 같다. 요새 TV에서 집중력보다 주의력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집중력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이고 주의력은 그렇지 않더라도 집중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무슨 일이든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업무의 수는 적고 그에 비해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더 많기 마련이라 그게 바로 버티는 거라고 표현되는 것 같다.

요새 어느 유튜버가 다 버리고 훌훌 떠나는 사람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보다 버티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 말 이후로 나도 이제 내가 버티고 있는 것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마음 가짐도 달라진 것 같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는 앞으로 후배들이 적어도 껄끄러워는 하지 않는 선배가 되고 싶지만, 하루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 그렇게 보내보고자 한다. 그나마 그 정도가 그렇게 특출나지도 않고 배경도 그럴싸하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계획인 것 같다.

이렇게 내가 근래에 하고 있던 생각을 정리하면 그래도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명확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은 울적하지만 어쩌겠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버티는 것 뿐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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