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렇지만 나는 서울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7살 이후에 그렇게 된 것 같다. 7살 때는 서울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곳쯤 되는지 알았던 것 같다.

 내가 이 나라에 관심이 있고 이 나라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치길 바라는 이유는 사실 내가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어쩌면 단순하고 무식한 진리에서 시작된 게 맞다. 인정하기도 싫고 거창한 이유를 붙여보고 싶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울은 나의 생물학적 고향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그 무조건적인 애정이 가지 않는다. 

 이유를 곰곰히 짚어보자면 언젠가 서울에서 더 이상 편안함이 아니라 숨막히는 낯설음을 접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서울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던 그 어느 날에는 서울은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서 빛나는 곳이었다. 그러다 서울이 가진 엄청난 무게에 압도되고 나서 나는 더 이상 서울을 좋아하지 않게 됐던 것 같다. 서울은 변한 게 없는데 내가 변해서 서울을 싫어하는 것이니 서울이 내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서운할 수도 있겠다.

 서두가 길어졌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은 이번에 서울에 갔을 때 꼭 서울이 내가 처음으로 가본 것 같이 정말 유난히도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아무래도 이번에 서울의 아침을 그것도 척척하게 비가 내리는 날에(전혀 촉촉하지 않았다. 정말 척척했다.) 온몸으로 체험해서 그런 것 같다.



비오는 날 서울의 모습, 출처 : http://aj_foto.blog.me/80112678288



 어느 새벽, 나는 일찍 일어나서 KTX를 여관으로 여긴 듯 몇 시간 동안 입을 벌리고 자는지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자다가 역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서 나 말고도 이렇게 새벽부터 서울에 가려는 사람이 많았던가하고 놀라고 있다가 지하철에 탄 순간, 나는 참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았다.
 
 단지 매일 8시에 지하철에 가득찬 사람들 사이에 내가 들어간 것 뿐인데 말이다. 내가 이 지하철에 타지 않았다고 해도 이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이 지하철을 타고 똑같은 표정으로 누가 스쳐지나가도 아무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니 스산함 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설명도 잘 되지 않는다. 나를 당장에 이 풍경에서 지우개로 지운다고 해도 전혀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누군가가 새벽 몇 시간을 기차로 달려와서 지금 당신들과 내가 당신들과 같은 아침에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까 하는 생각에 난 그 상황 자체가 마치 말이 안 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내가 꼭 시간 여행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모두가 내가 알든 알지 못하든 지구 어딘가에서 다 살아가고 있었던 건데 어째서 내가 그 곳에 가서 마주하고는 없었던 것을 새로 발견한 것처럼 신기해하고 있는 건지 나도 내가 참 기가 막혔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람 구경을 시작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서울에서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 구경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람이 북적거리는 걸 좋아하는 건 절대 아니다. 북적거리면 서둘러야 하고 정신도 없고 광장공포증은 아니지만 사람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것은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봐도 내가 하는 말이 서로 안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지치고 힘들고 삶이 덤프 트럭만큼이나 무거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혈색도 안 좋고, 어젯밤에 충분히 잠도 못 잔 것 같고, 멍한 눈빛으로 약간 찡그리고 있었다. 마침 내 귓가에서는 존 레전드의 "Save Room"이 나지막하게 흐르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Love가 몇 번씩 나오는 이 노래와 지금 이 풍경은 나는 내 mp3 플레이어의 선곡 실력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약간 제 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풋'하고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셜록 홈즈라도 된 듯이 그 사람이 입은 옷과 소지품을 보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까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물론 이건 무척 주관적이고 편견에 가득 차서 잘못된 결론으로 큰 일 날 수 있는 못된 버릇인 것도 같지만 그냥 내가 그렇게 생긴 걸 어떻겠는가.

 '저 사람은 셔츠가 구겨진 채로 입은 걸 보니 엄마랑 같이 살 거나 챙겨주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
 '걸음걸이를 보니까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 멋에 사는 사람이네.'
 '보나마나 귀여운 건 다 좋아하겠네.'

 답이 보장 되지 않는 이런 생각들 말이다. 그리고 이 때도 생각했고, 지금도 생각한다.

 "이 중에 내가 그냥 마주쳐 지나가 버리고 있는, 나중에 필연이 될 사람도 있는 걸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작정 마음에 드는 노래가 나올 때까지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렸더니 어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약간 놀란 눈치로 시선을 피했다. 도대체 뭘 보고 있었길래 그런 거지? 나는 괜히 내가 못 볼 꼴을 보여주기라도 한 건 아닌지 짧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차창으로 뒤의 모습이 반사되는 걸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돼서 나는 괜히 영화 속 정보요원이 된 것 처럼 평소에도 그렇게 내 뒤에 누가 오는지 내 앞에 있는 창문이나 거울로 관찰하곤 한다. 그래서 차창을 열심히 봤지만 별 반응이 없는 것으로 봐선 역시 내가 과하게 받아들인 듯 싶었다. 그냥 보면 될 걸 이렇게 몰래몰래 보는 걸 보면 사람을 관찰하는 걸 즐기지만 또 그걸 들키는 건 안 좋아하나보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쳐다보다가 그 남자처럼 걸리지는 않겠지 하고 마음 놓고 있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들키고 말았다.

 어떤 남자애였는데 머리를 모히칸 스타일로 자르고 웨이브를 준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옷도 긴 니트를 입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앤 드묄 미스터를 좋아하는 패션 피플처럼 입고 있었다.

 이 사람이 말로만 듣던 지하철로 기획사하고 집을 오간다는 연습생 중 한 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열심히 보고 있다'는 생각도 못 한 채 골똘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 순간 나를 딱 매섭게 쳐다보는 거다. 그런데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든 게 아니라 그 눈빛이 꼭 '너도 내가 잘난 걸 아는 거지?'하는 묘한 자만감이 느껴졌다. 그 눈빛에서 조금 괜히 내가 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조금 더 관찰하고 싶었지만 안 보는 척, 무시하는 척 했다. 결코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말로만 듣던 그런 사람이 '요기잉네?'하는 마인드로 본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봐도 나 혼자 유치하긴 하지만 정말 그랬다.

 그리고 사람 구경의 결과로 나온 생각인데 난 꼭 유행도 뒷북쳐서 따라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는 발목 양말이 유행이었는데 그 때 별로 못 신어봐서 한동안 발목 양말만 사놨는데 지금은 그것보다는 좀 더 긴 양말이 유행인 것 같다.

 그래서 로우탑 컨버스 운동화를 신어도 긴 양말을 신는다든가 하는 것 같다. TV나 잡지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이렇게 하는 거라고 보여주지만 실제로 그걸 그대로 하면 참 어색하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다보면 그런 걸 자기 자신에 잘 맞게 약간의 적용을 통해 자기 스타일로 잘 만든 경우가 있다. 나는 참 촌스럽지만, 꼭 잘 입어서가 아니라 이런 디테일이 마음에 들면 그걸 눈여겨 본다. '이렇게 입으면 재미있겠다'는 대리 만족으로 말이다.

 지금 그 결과로 내 머리에 박혀있는 건 짙은 보라색 양말을 신어서 워커 끝부분 위로 약간 그 양말이 보이는 모습이다.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만 하던 모습이었는데, 그걸 직접보니 정말 반가웠다. 물론 내색도 못하고 무표정으로 괜히 내 mp3만 만지작 거렸지만.

 홍대를 둘러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서울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은 예뻐 보이는 단 한 가지의 룰로 옷을 입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쁘든 예쁘지 않든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일단 입고 싶은 대로 입는 것 같다. 솔직히 예쁘긴 해도 대부분이 따르는 그 룰이 너무 비슷해서 색깔만 다르지 다 같은 곳에서 옷을 사입은 것 같은 느낌이 나는 건 별로다. 소심한 성정이라 장담은 못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다른 사람 신경 안 쓰고 내 마음 가는 대로 입어보고 싶다. 그렇지만 또 그런 생각도 하긴 한다. 자유로운 건 좋은데 이렇게 입는 건, 이건 좀 아니다하는 생각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무 관련도 없이 마음 가는대로 아무렇게나 생각하고 있는데 내 앞에서 머리에 하얗고 커다란 꽃핀을 꼽은 여자가 아련한 눈빛으로 모나리자처럼 번질 듯 말 듯한 미소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머리에 꽃을 단 것도 그렇고 화장을 한 것도 그렇고 옷을 입은 걸 봐도 무언가 일본풍이 느껴져서

 '아, 일본 사람이라 한국 여자가 뭔가 신기해서 쳐다보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화하는 걸 보니 한국 사람이었다. 그럼 도대체 그 아련한 눈빛의 정체는 무엇이었던 걸까? 내가 그렇게 무언가 딱하게 보였던 걸까. 너무 깊이 들어가면 내가 슬퍼질 지도 모르니 그냥 새벽에 잠을 못 자서 그 영향으로 무언가 혀를 차게 만드는 분위기가 느껴졌나보다 하고 넘겨버렸다. 아니면 언제나처럼 다른 사람의 티끌만큼 가벼운 반응에 건들기만 해도 움츠리는 미모사처럼 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재미를 느끼는 것도 잠시, 내가 이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철저히 이방인이라는 걸 느끼는 것도 더 이상 서울을 좋아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건 북적거리는 사람 가운데 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서가 아니라 다름 아닌 1회용 승차권 때문이었다. 일단 서울 사람이라는 범주에 들지 않으면 1회용 승차권을 발권하는 줄에서야 한다. 서울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괜한 소외감부터 확인하게 된다.

 무슨 보증금이 500원씩이나 해서 바빠 죽겠고 몰라서 헤매느라 죽겠는데 보증금 환급기까지 찾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것보다 이번에 역시 서울은 내게 먼 곳이라고 느껴졌던 것은 1회용 승차권을 대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어찌된 일인지 자꾸 에러라고 삑삑 소리만 나는 것이다.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몇 번을 다시 대봐도 돌아오는 건 무미건조한 기계음과 사람들의 '왜 저러고 있지?'하는 시선 뿐이었다. 난 그래서 오리걸음으로 걸어가야만 했다. 밖으로 나가서는 괜찮은 척 씩 미소를 지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괜찮은 척일 뿐이지 괜찮은 건 절대 아니었다.

 굳이 안 내려도 될 비가 징그럽게 내리는데 나는 이번에야 말로만 듣던 시크한 택시를 경험해보니 놀라웠다. 구조선에 SOS 신호를 보내는 조난자처럼 양팔을 흔들며 간절하게 쳐다봐도 택시 기사님들은 아주 평온한 표정으로 지나쳐갔다. 가고 싶은 곳을 말해보는 기회도 있었지만 대답이 끝나자마자 역시 평온하게 지나쳐갔다. 나는 순간 아주 예쁜 여자를 쫓아가다가 놓쳐버린 남자의 마음이 이런 걸까 생각했다. 그래, 희망 고문은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하는 게 아니다.

 버스를 타기로 마음은 먹었는데 비도 오는데 뛰어야 할 거리에 마침 정류장에 있는 버스가 보였다. 아직 시간도 있는데 뭐, 나는 갑자기 조선시대 '양반'의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그런데 웬일, 버스가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주인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천천히 걷다 마지막에는 총총 뛰었다.

 버스에 타자마자 기사님이 버스를 출발시키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걸어오고 있어요?"

 라고 하셨다. 설마설마 했는데 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아까 택시에 한 번 데어서 기대 안 하고 있었는데 의외였다. 나는 나를 기다리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게 서울에서 처음 버스를 탄 순간이었다. 소외감이 싫어 티머니 카드를 샀건만 충전을 하지 않아 카드를 쓸 수가 없어서 나는 기사님에게 버스비를 직접 내면 얼마인지 여쭤봐야 했다. 그러자 기사님의 이어지는 대답.

 "버스 처음 타 봐요?"

 역시 버스 기사님도 서울 기사님들은 다르다. 퉁명스럽다고 말하기에는 세련된 시크함이 잔잔하게 퍼졌다. 내 말투가 그래도 서울스럽기는 했나보다. 나는 들릴락말락하게

 "외지 사람이라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멋있는 척 '나는 서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계속 말하고 나서 왜 한편으로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들을까봐 왜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서울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을 들으면 명랑하게 웃게 되는지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규명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내가 이중적인가 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머리 위에 비가 내리는 사람을 봤다. 만화에서 보면 우울해서 머리 위에 빗금이 쳐진 사람있지 않은가. 계속 보면 볼 수록 그 사람이 내려서 걸어가도, 담배까지 피우는데도 빗금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라디오헤드의 Creep을 들으며 '왜 이 노래는 항상 들을 때마다 좋은 걸까'하고 미니홈피에 한 줄 짜리 일기를 남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을 본다는 게 참 흥미로웠다. 이 모든 게 그저 내 상상으로 결론난 당사자가 보면 화를 낼지도 모르는 나의 판단이지만.

 서울에 갈 때는 몰랐는데 서울을 떠날 때는 KTX는 편안한 귀향길이 되기에는 좁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역방향의 너울거림을 몸소 체험했다. 물론 생각보다 그 정도가 듣던만큼 강하지는 않았다.

 비로소 도착하고 나서 내가 더 웃겼던 것은 삭막하게 느꼈던 서울 사람들의 얼굴과 내가 살고 있는 곳 사람들의 표정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길고 긴 글의 시작은 어쩌면 모든 게 내 경계심에서 비롯된 착각에서 출발했는지 모를 일이다. 스산한 낯설음은 내가 그렇게 여겼기 때문이지 지금도 그 때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평소에 내가 느끼기는 바와 위의 관찰기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서울이란 도시는 다음과 같다.

 만약 누군가 생각을 하며 변화를 줬다면 세계 어느 고풍스러운 도시보다 제일 멋있는 곳이 되었을 도시. 그렇지만 지금은 간판들이 정신없이 아우성치듯 붙어있고 사람들이 필요이상으로 북적이며 세련된 것 같기도 하고 지저분한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래서 참 세상 어느 곳보다 재미있는 도시.

 하지만 이 흥미가 선호로, 애정으로 이어질 지는 두고 봐야겠다. 지금도 괜히 쿨하지 못한 것 같아 서울을 좋아한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반응형

'쓰고 듣고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금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0) 2015.08.03
무섭도록 매력적인 e-Life  (2) 2010.10.10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  (0) 2010.08.10
자기계발서는 당신을 모른다  (1) 2010.08.06
올바른 절망  (3) 2010.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