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절망

from 쓰고 듣고/에세이 2010. 8. 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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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주변 사람에게 내색도 하지 않고 웃어 넘기기도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은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기간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별로 생각하기도 싫지만 내가 '기간 중에 하나'라고 한 것은 이런 기간이 생각할 새도 없이 내 인생에 밀어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 말고 외부적인 것에 탓을 해보기도 하고 자괴감에 빠져있기도 하고 사실 울기도 많이 울고 나보다 힘든 사람이 많은 데도 굳이 나보다 잘 하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상처도 줘보았지만 이 기간에 대한 답은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나도 쿨하게, 의연하게, TV나 책에서 나오는 위인들처럼 혼자 삭히고 가족들에게도 걱정거리 주지 않고 씩씩하게 잘 헤쳐 나가고 싶었지만 그렇기에 나는 아직 엄마 말대로 헛똑똑이였고, 스무 살은 넘었지만 제 앞가림 하나도 못하는 어린애였다.(과거형으로 썼을 뿐 지금도 그렇다.)

 사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내 소망은 그리 크지 않은 것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고 3 말에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환상인지 소망인지 구분안 될 것들은 분리수거도 하지 않고 구겨서 어딘가에 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그저 대학에 가서 세상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저 그 안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것만 해도 혀를 내둘렀다. 나는 언제나 어려움이 가득한 완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다. 아마 나의 어려움만 보고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왜 내 작은 소망 하나조차도 굴러가게 하지 않는 건지 옳지 못한 원망도 했다. 마치 내가 아무렇지 않게 두 동강 내던 개미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내 주위에, 나에게 나는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나 스스로 예기치 않은 사건을 껴앉고 있어야 하나 하고 끊임없이 시달렸다.

 뜻하지 않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즐겨보던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풀렸다. 신을 삼키려고 했고, 잠시지만 신을 자기 안에 두었던 플라스크 안의 작은 사람, '호문쿨루스'에게 신이라고도 하고 진리라고도 하는 존재가 말하는 대목에서였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내용이 너무 길어서 모르면 어쩔 수 없다. 궁금하면 위키피디아라도 찾아보시길….)







 "아니, 너는 어떻게 될 지 알고 있었다. 너에게 올바른 절망을 주겠다. 잘못 되었다는 것을, 결과에 대해 책임을 배우게 하는 절망을 주겠다."

 나는 그 동안 무시무시하다고 생각했던 그 호문쿨루스에 대한 신의 결정을 보고 머릿속에 놓여있던 내 생각이 우르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바라는 게 뭐가 나빠?"

 궁금하고 단지 바랐을 뿐이라는 호문쿨루스의 외침을 보고 나는 내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는 안일하게 결과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바라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바람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나는 결과라는 열매를 쥘 만큼의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 생각만 했던 것이었다. 그 때도, 지금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잘못된 바람은 잘못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내 지난 일기를 보고 나는 그 사실에 대해 확신할 수 있었다.

 잘못된 바람인 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 길을 걸어갔기에 나는 그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확실히 내게는 문제가 있었다. 그것을 맞이하는데 어쨌든 간에 내게 원인이있었다. 내가 비교했던 우위의 많은 사람들은 올바른 바람이든 잘못된 바람이든 간에 그것을 유지해나갈 그 만큼의 무게를 잘 버틴 것일 게다.

 예전처럼 처음으로 비행을 준비하다 둥지에서 떨어져서 어미새마저 떠나버린 어린 새처럼 나를 여기며, 자괴감에서 허우적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다만 앞으로 나아갈 때 나에 대해서 더 생각해 봐야겠다.

 바람이 옳지 않을 때 절망이 있다면 바람이 옳을 때는 잘 익은 열매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내려진 올바른 절망은 내 인생의 그래프가 비록 꺾은 선이라도 위로 상승할 수 있도록 뼈아프게 소중한 가르침을 줄 것이 틀림없다.


* 어쩌면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문제에 불과한 데 무슨 이리도 거창하게 써놨느냐고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지만 단 한 문장으로 끝나는 한 사건이 내게는 너무나 힘든 것이었다. 이렇게라도 합리화하지 않으면 계속 힘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는 마음 아픈 일들에 대해서는 정 떨어진 남자친구 대하듯이 크게 마음쓰지 말아야겠다. 그렇지만 나는 한 편으로 계속 소망하고 있다. 올바른 절망을 그다지 많이 경험하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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