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동물이 더 좋은가? 그리고, 강아지 같은 사람과 고양이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겠는가?

 내가 말하는 것은 여자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이른바 '강아지상', '고양이상'하는 얼굴형의 문제가 아니다. 강아지처럼 잘 해주는 사람을 주인으로 따르고 언제나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인가, 혹은 다른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가끔은 발톱으로 할퀴기도 하는 매서운 구석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전에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던 앨범들.


 
 이래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면 가정을 하나 해보자. 한 사람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고(적어도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고) 우울할 때 재밌는 얘기라도 찾아서 해 주며 내가 약간 우위인 것처럼 느껴지는 친구와 한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 고민이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나도 피하고 싶은 문제를 정확히 짚어주며, 당신이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자신의 영역을 공유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과연 당신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겠는가?

 그리고 당신이 어떤 회사의 사장이라면 둘 중 어떤 사람을 직원으로 뽑겠는가?

 대부분 전자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후자의 성격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라는 틀 안에서 후자의 사람은 대개 버릇없는 사람이나 무례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고, 그런 성격을 동경하긴 하더라도 곁에 두기는 싫어한다.

 내가 말하는 고양이 같은 사람을 요새 인기인 '츤데레'와 결부시킬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만화나 영화에서 나오는 수많은 '츤데레'들은 착한 성격이 까칠한 성격으로 바뀐 것일 뿐 엄청난 부나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의외로'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야 고양이 같은 사람들의 입지는 매우 좁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 때 강아지같은 사람과 고양이같은 사람이 있을 때 대개 고양이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가지고 있는 능력마저도 의심받거나 평가절하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아무리 고양이 같이 매서운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의로 바꾸거나 감춘다. 그리고 강아지들이 되어 다른 고양이들을 무시하거나 배제해버린다. 한 마디로 가식을 떨어야 하는 것이다. 바꾸거나 감추거나 가식 떠는 것마저 실패하면 심한 경우에는 마음에 병이 생기기도 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냐, 아니다'라고 말할 지도 모르다.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 되었다거나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견디기 힘들어하기 마련이니 인정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 현실에선 내가 말했던 사실의 수많은 예들이 벌어지고 있다. 장학금은 어려운 사람에게 주지만, 공부를 못하는 불량 학생은 받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아직도 계속되는 착각이 공부를 잘하는 것이 밝은 미래와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다니고 돈이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 혹은 추앙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단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난이나 낮은 지위가 한 사람을 불행하게 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지만 공부를 잘 하고 가식이든 뭐든 간에 강아지처럼 굴면 그것이 나은 삶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있다. 만약에 모범생이자 인간관계가 좋은 아이와, 인간관계도 별로 좋지 않고 거칠게 살아가는 아이 중 전자의 미래가 절대적으로 후자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왜 단정짓는 것인가? 또,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나 자신이 한 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아무 관심 없이 있다가 어떤 사람을 타겟으로 삼아서 그 사람을 손가락질하는데만 심혈을 기울인다고 해도, 그런 사람을 외면했던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모두를 없앨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의 많은 경우 기회가 있었더라면 달라질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기회를 준다면 강아지처럼 당장에 굴지는 않더라도 자기가 다칠까봐 오버해서 거친 척하는 사람들이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내가 말하는 것은 열심히 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쓸데 없는 것이라는 게 아니다. 그런 사람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아예 단정짓고 보는 것조차 왜 껄끄러워하며 기회조차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가? 아무리 자신의 의지가 없다고 해도 기회라도 한 번 쥐어줘봐야 할 쪽은 누구인가 말이다.

 왜 한 가지 방향에 서지 않으면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인가?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나도 아직은 강아지가 더 좋은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다. 나도 고양이같은 사람들이 강아지처럼 되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마저도 강아지가 더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주고 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 글을 보고 지금 당장 죄책감에 허우적거리라고 쓴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이 강아지 쪽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냥 거친 고양이들을 넓은 마음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겠으면 '허허, 참 재밌는 녀석이네'하는 시선으로라도 봤으면 좋겠다.

 성공과 실패라는 틀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편리를 위해 우리가 원래부터 가졌던 행동에 붙인 분류일 뿐이다. 언제부턴가 실패라는 딱지를 갖게 된 사람들을 그 틀안에 몰아넣고 다시는 작은 성공이라도 맛보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지만 그것은 엄연히 억지다. 아까 말했듯이, 실패란 편리를 위해 붙인 말 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내가 말한 가정 중 강아지에, 그것도 진짜 혈통 좋은 강아지같은 사람이라면 '고양이 녀석'이라고 낙인 찍지말고 '저 녀석 기회라도 한 번 던져줘야겠는데'라는 마음을 가지길 바란다. 원수같고 짜증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그 고양이의 젖을 먹고 도움을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BnHSQUivzn9KDhM103JALLgi6uvOTbgl4oRsO9nYu40,
반응형

'쓰고 듣고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계발서는 당신을 모른다  (1) 2010.08.06
올바른 절망  (3) 2010.08.06
내 인생은 실패하지 않았다  (0) 2008.06.10
샤프  (0) 2007.01.17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0) 2007.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