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프

from 쓰고 듣고/에세이 2007. 1. 17. 22:04

반응형

 나한테는 샤프 한 자루가 있다. 샤프가 잘못된 말이네 뭐네 하지만 나는 샤프라는 말이 더 정겹다. 보통 때는 올바른 말과 표현에 곤두세우지만 나는 샤프라는 말과 몇 가지의 경우에는 꽤 너그럽다.

 사실 그건 온전한 샤프 한 자루로 보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장기를 바꿔끼운 것처럼 몸통 전체를 바꾸고 주로 쓰는 부분만 갈아끼운 것이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좋아하는 샤프의 생김새

 그 샤프를 받은 건 내가 10살 때였다.

 그 때는 내가 21살을 먹었을 때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지 생각도 했을 때였다. 그림그리기 대회에 나가서 기념으로 탄 제도용 0.5㎜ 샤프. 별 게 아니었을 수 있는 그 샤프에 나는 집착하게 되었다.

 시험 볼 때도 그 샤프로 보려고 애썼다. 상관관계가 특별히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그 샤프로 봤기 때문에 시험 점수가 더 잘 나왔다고 생각했고, 점수가 그리 좋지 않았을 때는 이상하게도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다.

 그렇게 샤프를 쓴 지 6년인가 7년이 되었을 때 샤프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너무 안타까웠던 나는 샤프의 윗부분을 멀쩡한 샤프의 몸통에 끼워버렸다.

 맨 처음에는 단순한 싫증으로 그 샤프를 버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 내 자신을 뿌듯하다 생각했고, 나중에는 그 대회에 나가서 타게 된 상 때문에 그런 것인가보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결국 그것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나와 좋을 때든 나쁠 때든, 글이 잘 써질 때든, 못 써질 때든, 누군가의 욕을 쓰든 이것과 함께했을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샤프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땀이 많은 나의 손 때문에 칠이 벗겨지고 반짝거림은 다 사라져버린 샤프를 나는 아직도 버릴 수 없다. 처음의 반짝거림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샤프가 나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참 이상한 아이인지도 모른다. 단지 나와 함께 했던 시간때문에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은 샤프 뿐이 아니다.

 그것때문에 언제나 이익만 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바꾸고 싶지는 않다. 단순한 싫증이나 판단으로 여러 가능성과 모든 걸 버리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미련을 사랑하는 지 모른다.

 그 샤프를 계속 쓸 것 같다.

반응형

'쓰고 듣고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계발서는 당신을 모른다  (1) 2010.08.06
올바른 절망  (3) 2010.08.06
강아지와 고양이  (2) 2010.05.17
내 인생은 실패하지 않았다  (0) 2008.06.10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0) 2007.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