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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 줄은 알았지만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지는 몰랐다. 초등학교 시절 생각했던 대학교라는 곳은 상상속의 곳이었지 실존하는 곳으로 자각하지는 못했던 곳이었다. 요새 알 걸 다 알아버린 몇몇 영특한 초등학생들에게 어느 대학에 갈 지 물어본다면 

 "인서울 ○○대학이 목표에요."

 라고 쿨하게 말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렸을 때 특유의 뚝심있는 무지로 인해 개그콘서트 멘트처럼 아무나 다 공부를 조금만 하면 하버드 대학 쯤은 다 쉽게 가는 지 알았다. 이 밑으로 간 사람은 조금 불행한 거구나하고 여겼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못 믿겠지만 나는 진짜 그랬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학에 간다는 것 말고는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정말 거부감이 심한 축이었다. 어른이 된 기쁨보다 어른으로서 짊어져야할 부담감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웃긴 것은 외적으로는 어른이 되긴 했지만 나는 아직도 어른으로서 짊어질 부담감은 제대로 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내 나이만큼의 무게를 갖는 것 조차도 벅차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하는 지금
 

 어쩌다 후배들이 줄지어 90도로 인사를 할 때면 내가 이만큼 자랐구나가 아니라 반지의 제왕 간달프급 원로가 된 느낌이 들어 정신적지주도 아니고 물주도 아니었던 내가 한 건 몇 살 더 먹은 것밖에 없는데 하는 마음에 나는 '아, 아니야…'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몇 마디 말을 옹알이하듯 내뱉고 언제나 손사래를 치며 어색해한다. 후배로 있을 때 선배가 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선배가 되어보니 내가 후배로 있을 때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이미 알던 사람들 말고는 다가가지 못할 것 같고 몇 살 차이나는 후배들에게는 딱히 해 줄말도 없다. 내가 후배였을 때 먼저 다가와줬던 여러 선배들이 떠오를 때면 대단하고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어딜 가든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나이인 것도 아니다.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임에는 틀림없지만 내가 제대로 어른 행세를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보기에는 '어리다'고 충분히 표현하기도 하는 나이이기에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고 어정쩡한 느낌이다. 어른 대접 받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렇다고 나이가 정말 이렇게 나이가 들어간다고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나이고, 아직 투정을 부려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나이는 아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그러겠지만 초등학생이 보면 내 나이 정도면 아줌마 정도로 느끼거나 중고등학생이 보면 청춘이 다 갔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나이라고나 할까. (사실 내가 그 나이 때 이렇게 생각했었다.)

 어렸을 때 가졌던 환상이 크게 되면 언제나 자기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내 꿈과 가깝게 살고 있으리라 하고 의심도 하지 않았건만 그 꿈과 현실의 격차가 약간 준 것 같긴 하지만 그 외엔 별로 바뀐 것도 없고 한 것도 없이 커 버린 느낌이다. 



나이가 들어 변하는 모습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말 좋지 않은 것은 나만은 그렇지 않을거라고 여겼지만 예전에 듣던 노래가 좋아지고, 요새 어린 녀석들은 네 가지가 없네 하는 이런 비논리적인 생각에서 나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것 등등 기타 내가 어른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하던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나도 그들 중에 하나가 되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무리 오천 년전 이집트에서도 누군가 파피루스엔가 벽화에다가 '요새 어린 녀석들은 네 가지가 없다'는 얘기를 썼다지만 내가 내 나이가 오천 년쯤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가 얼마나 들었다고(안 그러려고 노력도 하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곤 하는지 나도 잘 내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 말을 제일 싫어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나였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면 갈 수록 티셔츠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도 부끄럽다. 그렇지만 그냥 그렇게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지, 옷차림을 바꾸지는 않았다. ^^;;

 나란 사람은 몸은 점점 나이들어가더라도 마음은 언제나 푸른 대나무처럼 젊은 채로 그대로 있을 줄 안 나는 절대 나보다 후배들을 싸잡아 네 가지 없는 이들로 만들지 말지어다, 나는 예전 노래 따위 찾지 않고 언제나 현재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굳게 다짐하고 믿었건만 역시 그런 다짐들은 내 쓸데없는 오만에 불과했다.

 왜 내가 그런 오만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면 나는 과거에서 그 당시의 내 모습이 전혀 변하지 않을 것으로 가정했기 때문이었다. 내 모습 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HOT와 젝스키스가 해체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또 그들이 해체된 후에도 추억속의 그룹으로 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에도 역시 뭐라뭐라 말이 많았지만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의 열기는 지금과는 무언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채워주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잊혀지고 또 작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들이, 우리가 이제 모든 것을 바꿀 것이고 우리가 가진 그 모든 것들이 계속 그렇게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내가 겪었던 모든 것들은 그렇게 그대로 내 곁에 남아있지는 못했다. 또 나도 그 모든 것들을 항상 마음에 두지 않았고, 때로는 지체하지 않고 바꾸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이를 한 살씩 더 보탰던 것 같다.

 일례로 이런 저런 사실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가장 슬픈 것은 내가 기성세대가 되는 것이 멀지 않았다는 것과 그 후에 미래의 세대들에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런 사람들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예전에는 보수적이고 편향적인 일부의 기성세대에 대해서 일단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면 지금은 그들의 고집 뒤에 감춰진 외로움이 보이는 것 같아 안쓰러울 지경에까지 왔다. 이러다가 나도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이제는 나도 내 전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전혀 그리워하지 않을 줄 알았던 기간들에 대해서 그리워하고 하마터면 '그 때가 더 좋았어'라는 말도 할 뻔 했다. 그렇지만 아직 그 정도로 추억이 매력적이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시간이 내게 준 가르침을 애써 찾아보기

 이럴 때 나오게 되는 마음가짐이 바로 애써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는 것이다. 때로는 잔인하게, 그저 그렇게, 가끔은 즐겁게 지나간 시간들이지만 그래도 그 몇십년의 시간이 단지 나에게 나이만 주고 가지는 않았다. 사실 그렇지 않고 나보다 몇 살이라도 어린 사람이 부러울 뿐이고, 지금 나에게 남은 건 남루한 나이 뿐이라고 해도 지금은 일단 무언가가 있다고 믿어야 한다. 아직도 상처가 하나 늘 때마다 상처로 인해 내가 다져지기 보다는 가끔은 그런 척만 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다.

Green Earth, 나도 나이가 들 때마다 마음에 나이테가 둥글게 생겼으면 좋겠다. http://www.designboom.com/contest/view.php?contest_pk=23&item_pk=22753&p=1




 나는 안 그런 척 했지만, 그리고 그런 편견을 싫어했지만 뒤돌아보니 나도 편견은 누구에 못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을 볼 때면 박명수를 보는 정준하의 할머니처럼 '저저저~'를 외치며 혀를 쯧쯧차기도 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그게 다 열등감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놓고 열등감을 말하면 괜히 자존심 상하니까 말이다. 지금은 괜히 미워하던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미워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성인 군자 이외에는 없지 않은가.(어설픈 자기 합리화)

 그래도 나이 들어서 내가 오만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예외적인 일들에 대해 내가 더 너그러워졌구나 하고 착각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또 나란 사람이 큰 존재가 아니라 작은 존재고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해주는 존재라는 것도 알았다. 예전에는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 갈 수록 지식이면 지식, 마음이면 마음 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깊이 깨닫게 됐다. 그 반면에 나보다 나은 그들 모두 또한 모든 면에서 누군가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는 것도 동시에 알게 됐다.

 또 가장 내가 많이 늘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라는 것을 잘 생각하지도 않았고 염려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기준에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에는 그 사람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해 버릴 뿐이었다. 그러다 내가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서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이 모이다 보니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좋아하지는 못하더라도 예전처럼 부정적인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는 나아진 것 같다.

 반면에 순진하게 책이나 TV에 나온 사실들은 모두 진실이라고 굳게 믿던 버릇은 없어졌다. 그 때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하는데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기 보다는 약간 나만의 주관으로 약간의 의심을 하는 것도 손해볼 것은 없겠다는 생각은 하게 됐다.

  말로는 심각해 보일지도 모르고 길게 주야장천 썼지만 어쩌면 위의 글 전체가 한탄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닌 것을 호들갑 떤 것 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이렇게 근사하게 말해도 내 생각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살이라도 어린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이만 먹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면 서운할 것 같아 나이를 한 살 한 살 보탤 수록 이런 것들이라도 늘었으면 좋겠다. 허둥대지 않는 여유를 얻고, 지금 내가 보는 미래가 현재가 된 시점에서는 그 '현재'를 더 사랑하게 되기를, 시간이 가르쳐주는 지혜가 많아져서 시야가 넓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결론 : 나이가 들 수록 느는 게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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