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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가면 갈 수록 문화생활 내역이라고 쓰고 뮤지컬 내역을 쓰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정리해본다. 이 해의 시작은 뮤지컬의 끝판왕 급인 레베카로 시작하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이 때까지는 T멤버쉽 50% 할인이 가능해서, 거의 첫공 시즌에 보게 됐다.



20160107 레베카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이 블로그에는 그래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정제해서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얼마나 내가 자제하면서 평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너무나도 대단한 공연이었다. 다른 공연보다 많은 기대를 했었던 건 사실이지만 사실 류정한-신영숙 페어만을 기대하고, 레베카 ACT2만을 고대하면서 간 공연인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너무나 좋았던 공연이라 혹시 레베카가 공연 중일 때 레베카를 볼 지 말 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예를 들어 맛집이 있으면 나는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추천했다가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아서 걱정하는 맛집이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 싫어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맛집이 있고 한데, 레베카는 맛집에 비유하자면 남녀노소 누구나 와서 보고는 '완전 맛있다!'라고 감탄할 정도의 맛집이라고나 할까. 평소에 무엇이든 확언을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레베카는 이런 나마저도 확언을 하게 만드는 엄청난 작품이다.


처음에 극을 시작하면 그림이 그려지다가 호텔이 펼쳐지는데 호텔에서 다른 장소로 변하는 게 순식간이라 확실히 규모면에서 시작부터 사람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규모도 그러하지만 '나'의 넘버로 시작하는데 송상은의 목소리가 맑고 울림이 있어서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아까 말한대로 나는 류정한-신영숙 페어만을 기대했고, 송상은의 경우 염려의 목소리가 많았던 것도 같으나 실제로 보니 나에게는 '나'라는 역이 송상은에 정말 꼭 맞는 것 같았다. 나보다 어린데도 존경심이 생길 정도로, 순수하고 상큼했다가 후반부로 갈 수록 강단이 생기는 모습을 잘 표현해낸 것 같다. 댄버스 부인의 경우도 연기와 넘버 소화력 때문에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 밖에 안 된다고 생각되는 작품인데, '나'라는 역도 맑은 감성을 표현해야 하는 만큼, 곡 소화력도 그렇지만 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몇 사람 되지 않는 것 같다.


류정한-신영숙 페어를 고려해서 선택한 날짜이지만, 하도 '레베카=댄버스부인 나오는 뮤지컬' 이렇게 인식이 박혀있던 터라 류정한을 본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지 막심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는데, 뮤지컬이라 그런지 막심과 '나'가 급 사랑에 빠지는 것이 그렇게까지 이해는 가지 않았는데 류정한-송상은의 호연이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게 해줬던 것 같다. '칼날 같은 그 미소'도 초반의 귀족적인 모습에서 공포심에 둘러싸여 무력하면서도 두려움을 나타내는 상반된 느낌의 막심을 제대로 표현해냈다.


그렇지만 레베카는 주연들의 호연 외에도 조연들과 앙상블도 모두 대단한 호연을 보여줬는데, 특히 앙상블의 경우 지크슈는 안무가 무척이나 많아서 힘들 것 같았는데 레베카 앙상블은 춤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옷도 자주 갈아입고 무대도 자주 바뀌고, 합창도 맞춰서 소리를 예쁘게 내야 하는 것이 무척이나 많은 데다가 개인 파트까지 많아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극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데 앙상블도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중에서도 오기쁨의 경우 다음에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됐다.


잭 파벨 역을 맡은 최민철의 경우 '오 나의 귀신님'에서 코믹한 역할로 봤던 터라 궁금했는데 신체 조건도 그렇고 대극장용 배우가 아닌가 싶었다. 개인적으로 몬테크리스토에서 몬데고를 맡았었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에드몽 당테스를 맡으면 '아 여자'라거나 하는 약간 기름기(?!)가 필요한 넘버들하고 음색이 잘 맡을 것 같다 싶었다.


반 호퍼 부인의 경우 이 역할 자체에 기대한 것이 없었는데 김희원이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줘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된 것 같다. 다른 조연으로 나온 출연진을 제외하고 마지막 인사 때 가장 큰 박수를 아낌없이 받았다. 베아트리체 역인 이정화의 경우 음색이 깨끗하면서도 후반 넘버로 진행될 수록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존재감이 무척이나 확실했다. 


프랭크 역의 윤선용의 경우 넘버가 딱 튀는 것보다 정말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하는 프랭크의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 벤 역으로 나온 김순택의 경우 넘버는 같지만 장면장면 나올 때마다 각자 극 흐름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부른데다가 참으로 절절했다. 


민영기-차지연-김보경 페어로도 보고 싶지만, 아직까지는 같은 공연을 두 번 이상은 보러 가지 말자라고 결심하고 있어서 실제로 보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금전적인(!) 문제도 있거니와, 결국 두 번 이상 보면 나 혼자서 나도 모르게 어떤 캐스팅에서 공연이 더 좋았는지 비교하게 될텐데, 그런 것보다 지금 공연이 좋았으면 간직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 공연이 마지막까지 끝나지도 않았는데 다음에 또 레베카를 공연한다면 누가 할 지 상관 없이 일단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60213 넥스트투노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오히려 주말에 무언가를 보기보다는 웬만하면 평일에 보려는 성향이 생겼는데 박칼린-남경주-최재림 조합으로 보려면 이 때 가야만했다. 원래 3월에 보려는 계획이었으나, 가만보니 에어포트 베이비에 최재림이 나오고 2월 말부터 3월까지의 일정인데 그러면 최재림이 빠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일정을 찾아보니 이 조합으로 보려면 2월 13일 밖에 일정이 없었다. 그래서 원래 3월에 볼 예정이었으나 2월에 보게 되었다. 사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그 때까지가 공연티켓친구의 50% 쿠폰이 걸리는 날이기까지 했고 말이다.


내가 왜 박칼린-남경주-최재림 조합으로 보았는가하면, 다들 뮤지컬에서 대단하다고 알려진 사람이기에 한 번쯤은 그들이 어떤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뮤지컬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가 보니 두산아트센터는 차를 갖고 가기엔 조금 불편한 것 같지만 종로 5가역에서 정말 가까워서 접근성은 괜찮았던 것 같다. 그 동안 갔던 곳들은 다 지상에 있었는데, 연강홀은 지하라서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가습도 해 주고 쾌적하고 약간 명동예술극장처럼 아늑한 느낌이었다.


나는 중2병이 많이 창궐하는 중 2 정도에 슬픈 노래를 심각하게 좋아했지만 그 이후로는 슬픈 노래는 아예 들을 생각도, 불러볼 생각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몇 곡은 좋아하는 곡들이 있지만 그렇게 자주는 듣지 않는다. 그런 나에게 넥스트 투 노멀은 넘버들 자체는 그렇지 않지만 극이 내가 딱 좋아하는 타입이라고 얘기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넘버들이 세련되었으면서도 전반적인 곡조가 나중에는 꼭 희망이 있을 것 같아서, 참 좋았다.


나는 역시 박칼린-남경주-최재림 조합에 대한 선택에 대해 후회 없는 조합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무엇보다 박칼린은 음악감독으로 더 유명하기 때문에 연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노래도 좋았지만 그보다 절절한 연기가 참 마음에 남았다.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역을 맡았을 때 가장 1차원적인 해석이 누가봐도 그냥 미친 사람으로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박칼린이 연기한 다이애나는 왜 그리도 아픈지, 그 아픔이 어떤 것인지 깊게 다가오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 극에 다이애나로 설려면 그렇게 단순한 해석으로 하는 연기로는 서지도 못 했겠지만.


마지막에 약간의 희망을 내비치기는 했지만, 확실히 이 극은 확실히 가벼운 극은 아니다. 즐거울 때보다는 힘든 일이 있을 때 내 아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서 뒤돌아보게 하고 마주서게 하는 그런 극이었다. 아직은 아픔을 마주할 정도로 그렇게 단단하지는 않아서 다시 볼 기회가 있을 때 또 보게 될 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이 극을 아직 보러 가려는 '가족'이 있다면 비록 실제 연령은 낮게 받았을 지 모르지만 이 극은 미성년자가 봐도 상관은 없는데 최하 만 15세 혹은 만 16세 정도는 되어야 극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봐도 상관은 없지만 심정적인 이해가 안 될 것 같으니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이라면 고려해보길 바란다.



20160220 민트페스타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




나는 스무 살 무렵부터 페퍼톤스를 좋아했다. 무언가 스무 살 무렵부터면 벌써 10년이 넘은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그래도 중고등학교 때 접한 것은 까마득하다고 느껴지는 것과 달리 스무 살 부터 접한 것은 그리 오래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스무 살 때부터 만난 친구들도 그렇고 그 때부터 좋아한 것도 그냥 몇 년전 처럼 느껴진다. 그냥 가끔 기간을 숫자로 말하면 '참 길었네'하고 느껴질 뿐이다.


되도록 그 무엇이든 편애하지 말자고 다짐을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페퍼톤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었다. 저번에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정재일도, 데이브레이크도 보고, 노리플라이 단독 콘서트도 갔지만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건 바로 페퍼톤스였으니까. 비록 Ready Get Set Go는 안 부를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지만 말이다. 페퍼톤스를 본다고 해도 보고 싶은 인물들이 아주 많다는 게 함정이지만.


신세하는 안타깝게도 내가 늦어서 보지 못했고, 위아더나잇 무대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위아더나잇은 다들 한 인물해서 거기에 있는 연령대보다는 소녀팬들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특히 10주년 축하한다는 말을 잘못해서 50주년 축하한다고 말하는 바람에 참 본의 아니게 즐거움을 줬다. 따로 들어봐야겠다.


그 다음 더 모노톤즈에서 어렸을 적에는 문샤이너스로 봤던 차승우를 봐서 즐거웠다. 문샤이너스로 보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그래도 조금은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칵스는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진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무려 이전에 탭소닉에서 12:00이란 노래가 있었는데 그것도 그렇고 탑밴드에서도 큰 임팩트는 아니었기에 노래 전체를 알지 못했었는데, 전체적으로 노래가 열정적인 경우에는 세련되지 못한 경우가 많은데 무언가 밸런스가 잘 맞는 느낌이고 세련되어서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노래가 많았다. 스탠딩인데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조금 더 기력이 생기면 나중에 '흥에 겹고 싶고나'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 단독 콘서트 가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대망의 페퍼톤스. 앞서 칵스가 '여러분들 페퍼톤스 보러 오신 거죠?'라고 했을 때 그냥 웃기만 했으나 나는 실제 그렇다고 마음 속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페퍼톤스에게 가창력을 기대한 바가 없었다. 나는 스무살 때부터 그들을 좋아한 오래된 팬으로서, 그들이 코창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말해오곤 했다.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아닌데도 부르는 걸 힘겨워했지만 음이탈이 나지 않아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사실 뭐 가창력보다는 디기당디기당 하는 맛에 좋아했었긴 하지만. 


노래가 좋은 것도 맞지만 나는 그보다 내 과거와 조우하고 있다는 느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근데 참 재밌는 것이 벌써 이들을 안 지가 10년이나 되고, 앨범 째로 들은 것도 꽤 많은데 왜 들려줬던 곡들 중 그리도 제목을 몰랐는지. 오랜만에 정말로 좀 더 찾아봐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3만 원이라는 가격에 비교할 때 민트페스타는 가성비가 갑인 것이 맞는 것 같다. 나중에 한다면 라인업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또 갈 것 같다. 



마치며


3월에 프랑켄슈타인을 볼까 말까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금전적인(!) 압박이 있는 시즌이라 월 1회 문화생활을 모토로 하고 있는 나로서는 2월에 2회의 문화생활을 진행했기 때문에 3월에는 50% 쿠폰이 나오지 않는다면 (1+1 말고) 아무래도 3월은 깔끔하게 쉬어야 할 것 같다. ㅠㅠ 그래서 지금 그냥 1분기를 마무리한 채 글을 올린다.


특히 이번 해에 내가 웨스트엔드에 가서라도 보고 싶었던 '위키드'도 있고 여러 공연들이 많아서 가슴이 더 두근반 세근반 하고 있다. 다만 뮤지컬에 너무나 치우지는 것 같아서 연극도 조금 더 챙겨보고 전시회도 조금 더 분산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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