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이번 해 들어와서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직을 7월 말에 한 후로 한 달에 한 번 이상 빠짐없이 나름대로의 문화생활을 계속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표를 살 때는 부담이 되기도 하는 건 사실이지만 막상 현재로서는 지금까지 냈던 돈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가 없고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빠뜨리지 않고 계속 뮤지컬, 연극 등등 모두 골고루 잘 볼 계획이다.




20150821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롯데씨어터


V넥(!)이 돋보이는 지저스 및 멋진 멤버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뮤지컬이었다. 그런데 처음 본 뮤지컬이 너무 완벽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보는 뮤지컬은 계속 이 뮤지컬과 비교를 끊임없이 하게 될 것 같다. 처음에 유다의 '그들만의 천국'으로 막이 오르는데 강렬한 전주가 사람들을 일순간에 집중시켰고 큰 대사 없이 노래 위주로 진행되는 이 작품에서 앙상블이 작은 실수 하나 없이 거대한 극을 끌고 가는 것이 무엇보다 감탄스러웠다. 


지저스를 맡은 박은태의 경우 겟세마네에서 보여주는 집중력과 처연함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이영미의 경우 극이 끝나고 나서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영미가 보여준 마리아에 대한 해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유다로 출연한 윤형렬의 경우 비장미가 넘치면서도 진중함이 있었다. 김영주의 경우는 숨쉴 곳 하나 없는 삭막한 극 전개 속에서 산소와 같은 역할로 누구보다도 매력 넘치는 연기였고 지현준의 경우 그 시대에서 방금 온 것처럼 카리스마가 엄청났다.


약간 너무나 경직된 분위기라 극 중간중간 박수를 치기에도 조금 부담스러웠던 건 아쉬움으로 남지만, 정말 이런 공연이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20150905 모딜리아니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사진 보고 잔느 마음 이해함


사실 유럽에서 아직까지 미술관을 아주 많이 가봤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모딜리아니가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모딜리아니 작품 수 자체가 너무 적어서라는 말이 팜플렛엔가 기프트샵에 있는 책에서 본 것 같은데, 그래서 모딜리아전을 갔던 것은 참으로 잘 한 일 같다. 유럽에 가도 별로 볼 수 없는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을 전 세계 소장가와 미술관에서 끌어모아 한 곳에서 봤으니 말이다. 예전에 '고흐 in 파리'를 보러 갔다가 미술전이라기 보다 5일장 시장과 같은 분위기여서 작품을 마음껏 감상하지 못하고 사람끼리 늘어선 줄에 치여서 봤던 기억이 있어서 걱정을 꽤 했다. 바로 예전에 '고흐 in 파리'가 한가람 미술관에서 했었기 때문이다.


모딜리아니 전의 경우에는 그런 분위기 없이 한적했고 작품 감상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그리고 작품 배치를 생애 순서 대로 해 두어서, 도슨트까지 참석하니 모딜리아니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된 것 같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동안 미술 작품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보다 미술 작품 자체보다는 미술 작품을 남긴 사람이나 이야기에 대해서 더 관심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봤다. 왜냐하면, 모딜리아니 작품 자체에 내가 '좋아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기 때문이다. 가면 갈 수록 개인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진정한 명작은 크든 작든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20151001 맨 오브 라만차

디큐브 아트센터



나는 조승우의 오랜 팬이다. 솔직히 그래서 다른 캐스팅은 별로 생각하지 않고 편식하듯이 오직 조승우만을 고려한 일정을 선택해서 보러 갔었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큰 기대 없이 가서인지 공연을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맨 오브 라만차의 경우 세르반테스/돈키호테 역에 다른 대극장 공연도 그렇지만 왜 최고의 배우가 서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일단 1인 2역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무대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배우들의 연기로 채워야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새롭게 생각됐던 것은 천상지희의 멤버로만 알고 있던 린아였다. 엄청난 성량과 더불어 알돈자가 내면에 순수함이 있는 인물로 비치게 만든 것 같다. 앞으로의 공연도 매우 기대된다.


공연을 보기 전에는 돈키호테가 과연 어떤 희망과 꿈을 준다는 걸까 의아했었다. 공연을 다 보고 나서, 정말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화려함이 가득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한 감동을 줄 수 있는 공연이 바로 맨 오브 라만차 였다.



20151009 인턴



이 영화는 엄청나게 재미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 30대 CEO는 너무나 신경질적이고 연약하게 나타내고 70대 노인은 올드한 것이 아니라 클래식한 멋쟁이 나오고 고민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예 대놓고 메리 포핀스 같은 대놓고 판타지인 거라면 별 말 안 했을 것 같은데 어째 요새 애들은 그저 징징이들이고 예전 같은 멋이 없다고 한결같이 말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그렇다. 물론 나도 제임스 캐그니나 그레고리 펙이라던가 옛날 배우, 옛날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지금'에 대해서 불만이 정말 많은데 시간이 지나서 '지금'이 과거가 되고나면 아마 똑같이 '그 땐 그랬지'를 반복할 것이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없는 것 같은 노인을 자연스럽게 만든 것 같지만 캐릭터가 너무 입체적이지 않은 건 이 배우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문제에 너무 평탄한 것이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다. 아주 혹평할 것은 없는 반절 정도 잘 만든 영화인 것 같다. 



20151017 GMF

올림픽공원


입장부터 귀욤귀욤


내 위시리스트 중에 하나가 GMF에 가는 것이었다. 작년에도 가려고 했으나 피치못하게 가지 못하고 도대체 언제 가게 되는 건가 싶었는데 드디어 이번 해에 가게 됐다. 저번에 내가 가질 수 있는 기대의 모든 것은 조승우의 맨 오브 라 만차에 쏟아버렸고, 원래 지금 기력으로는 일반적인 락페스티벌에 가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했기에 느긋하게 보는 GMF를 좋다고 생각했던 터라 그렇게까지 기대가 엄청나지는 않았다. 


역시 기대했던 것처럼(?!) 마치 유럽과 같이 모두가 잔디밭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색다른 여유로움을 줬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유로움이라는 감정이 있는 곳을 찾기가 희귀한 실정인데 여기엔 그 여유로움이란 게 있었다. 이 여유로움만으로도 다음에도 또 갈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덤으로 그 날 날씨는 10월이 아니라 초여름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햇살이 지나치게 좋았다. 


원래 공연 시작은 12시 부터인가 그랬지만, 여유가 넘쳐 느지막하게 도착한 관계로 Mint Breeze Stage의 처음을 장식하는 노 리플라이의 공연은 보지 못했다. 그 대신 12월에 하는 단독공연으로 대체해서 마음의 짐은 벗었다. 


어반자카파의 경우 갑자기 부득이하게 일정을 소화 못 한 존 박 대신 갑자기 나온 것 치고는 많은 관객들 앞에서 화기 애애한 무대를 보여줬던 것 같다. 다만 너무나 어반자카파스러운 노래들만 불러서 좀 다른 느낌이 강한 최근 곡인 Get을 부르지 않은 게 참 걸린다. 아마 정식으로 초대받았다면 빈지노와의 무대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 외에도 나름 어반 자카파 노래를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사를 모르는 노래도 많고 그보다 거기 있는 사람들 중 거의 반절 이상이 노래를 다 따라불러서 놀랐다.


정식으로 정준일의 곡은 아니지만 '말꼬리'를 참 좋아하는데 역시 그 노래를 불러줘서 좋았고, 여태까지 정준일의 라이브 무대를 본적은 없어서 성량이나 기교적인 부분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가면 갈 수록 거의 락적인 분위기까지 보여줬던 것 같다. 맨 처음에 이 큰 무대에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그다지 차려입지 않고 나와서 놀랐지만 그보다 노래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하는 분위기가 어두워서 요새 혹시 실연했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오지랖스럽게 들었다. 그런 어두운 분위기에도 정준일이 조근조근 말할 때마다 소리지르는 20대의 소녀떼(?!)들이 꽤 많아서 저 사람이 참 인기가 많았구나 하는 거리감마저 느껴지는 그런 공연이었다.


데이브레이크가 원래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소담소담하게 신나는 느낌인지 알았는데 오케스트라도 많이 모시고 나와서 GMF라기 보다는 KBS '불후의 명곡'스러운 분위기로 폭발적인 신남을 보여줘서 역시 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공연에 돈을 아끼지 않은 모습이라 단독 공연 때도 이렇게는 안 할 것 같은데 저 분들 출혈 괜찮나 하는 노파심 마저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때 신곡 및 공연 영상 CD 판매 홍보까지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 전 무대들까진 그래도 계속 잔디밭에서 자거나 무신경하게 하던 사람들도 몇몇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흥에 겨워 춤판을 벌이던 모습은 쉽게 잊긴 힘들 듯. 



20151113 시카고 핫파티 시즌 5

디큐브아트센터



매년마다 세이브 더 칠드런과 함께하고 있는 시카고.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취지도 좋고 훌륭한 공연을 이리도 저렴하게 볼 수 있다니 이게 바로 일석 이조가 아닌가 싶다. 리허설 공연이라 멈출 수도 있다는 경고 문구가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시카고 미국 브로드웨이 현지 스탭이 오프닝 멘트도 해 주고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공연을 보고나서 예전에 봤던 시카고 영화도 보고, 브로드웨이 현지 영상도 봤는데 확실히 캐서린 제타존스와 르네 젤위거의 시카고와 뮤지컬과는 서로 다른 점이 극명한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Cell Block Tango 하고 When You're Good to Mama는 영화 속의 구성이 더 멋있는 것 같다. 영화는 다양한 화면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더 큰 규모로 풀어내서 그게 멋있는 것 같고, 뮤지컬은 여러 앙상블이 움직이는 모습을 동시에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터라 영화, 뮤지컬 모두 봐도 후회 없을 것 같다.


최정원은 40대가 넘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보기엔) 아이비보다도 안무에 더 훌륭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싶고, 아이비는 자신만의 색깔이 넘치는 록시 하트를 생동감 있게 보여줬다 무언가 '엇!' 싶으면서도 그 모든게 록시 하트인 느낌. 목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은데도 그런 낌새도 별로 못 느끼게 소화한 전수경도 매우 대단했다. 에이모스로 활약한 류창우의 경우는 자신이 노래하는 것에 놀라는 깜찍한(!) 모습도 보여줬는데, 다음 공연에서 제대로 부른다면 어떤 모습일까 매우 궁금했다. 이종혁의 경우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이번에 새로 시작해서인지 약간 아직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보여서, 앞으로는 더 좋은 모습이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사실 굳이 따질 필요 없이 모두가 훌륭했다.


마지막으로 모자 뜨기에 관해 설명하면서 마마 모튼 역의 전수경이 했던 재미있던 멘트들-'저희도 많이 춥게 입었기 때문에 힘든 마음을 잘 알아요' 등등-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20151204 시련

명동예술극장


극 분위기와는 다르게 포스터는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 연극은 순전히 이순재 선생님 때문에 결심하고 간 것이었는데 나오고 나서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도 그랬지만 지현준의 연기가 더 마음에 남게 된 경우다. 처음 본 뮤지컬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처음 본 연극은 시련인 걸 보면 첫 시작을 다 고전으로 보게 된 것 같다.


내용을 찾아보니 악령을 부르는 의식을 하고 있었다가 그랬다는 것을 들키게 되면 벌을 받을까봐 악마가/혹은 마녀가 시켰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데 극 중 진행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처음에 소녀들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너무나 혼신의 연기를 다 해서 '정말 악마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아비게일-존 프락터가 서로 대면하는 장면에서 아비게일이 존 프락터한테 그냥 우리끼리 춤을 춘 것 뿐이라고 얘기하는 게 오히려 거짓말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대단한 포스였다. 그 소녀들이 춤을 추는 걸 보고 (말이 춤이지 춤보다도 무언가 더한 느낌이었다) 나는 돈을 많이 주고 시킨다고 해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아비게일 역의 정운선은 정말 극장이 쩌렁쩌렁하게 발성이 좋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보다 호흡이 조금 빠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무언가 광기를 표현할 때는 엄청나게 몰입도가 좋은데 반면에 영악한 모습을 보여주는 때나 다른 면을 보여줄 때는 한 톤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내가 평론가가 아니기에 정확히 뭐라뭐라 언급할 수 없으나 나에겐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다음이 정말 기대되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뮤지컬에서도 보면 좋을 것 같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순재 선생님이 이 작품을 이유가 있겠지만 상당히 아끼시는 것 같다. 연극을 자주는 못하시는 것 같은데 이 작품만큼은 거의 매년마다 댄포스 부지사로 빼놓지 않고 출연하시는 것 같았다. 이전에 인터뷰를 보니 "배우는 외국어를 잘해야 합니다. 원전을 읽어보고 그 감성까지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이런 후덜덜한 인터뷰를 하셨는데, 이것도 아서 밀러의 원전을 예전에 보신 건지, 아니면 아무리 매년 한다고 해도 대사를 하나도 틀리시지 않고 연기 기계처럼 할 수 있는가 하고 감탄이 나왔다. 호흡도 매우 일정하고 이성적으로 계산을 해낸 캐릭터를 그대로 밖으로 나오게 한 모습이었다. 물론 나이도 있으시고 드라마를 많이 하시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이가 벌써 여든(!)이 넘으셔서인지 극장이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의 소리는 아니셨지만 빈약하게 해석하면 그냥 오버만하다 끝날 수 있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해석해내신 것 같다.

 

그 동안 얼굴은 낯이 많이 익다 생각했는데 이문수 선생님의 경우 정말 매력적이셔서 다음에 이 분이 나오는 공연도 꼭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이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무거운데 정말 나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쩌렁쩌렁함에 한 번 놀랐고 캐릭터가 정말 살아있는 듯한 모습에 두 번 놀랐다.

 

나는 정말 장애를 딛고 연기를 하시는 건가 했는데 정은경 선생님도 너무나 연기가 좋았다. 헤일 목사로 나오는 최광일의 경우 드라마에서나 영화에서나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톤인데 처음에 보면 생경한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해석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이 많이 남았던 것은 지현준이었는데, 존 프락터라는 역이 물론 주인공이고 가장 큰 역할을 하기는 하나 연기를 떠나서 이 분은 무언가 아우라가 느껴지는 수준인 것 같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좋지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더 멋있었던 것 같은데, 이 분은 뮤지컬도 멋있지만 그보다 연극을 할 때 더 멋있지 않나 생각했다. 극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몰입을 해서 감정이 고조되는 과정도 현실감있게 그려낸 것 같다. 아마 나는 이 분의 팬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도 예전에 책도 많이보고 그랬던 사람인데 한 해 한 해 지나갈 수록 감성에도 세포가 있다면 이 세포들이 죽어나가서인지 다 보고 나서도 "그러게, 바람을 안 피웠으면 좋았잖아, 이 사람아!!" 라고 생각했었지만, 아서 밀러가 이 글을 쓸 때의 배경을 알고나니 당시 매카시즘의 광풍이 들어 그 모습을 빗댄 것이란 걸 보고 이제 더 크게 이해가 갔다. 요새는 그렇게 극대화된 경향은 없지만 이 작품이 꿰뚫는 면면들은 아직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 다른 분들은 님은 생략했는데 차마 선생님들은 선생님을 생략할 수가 없었다. ㅠㅠ


꽃보다 할배에서 또 보고 싶습니다!


 

20151220 노 리플라이 콘서트 'Reply'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난 뒤. 사진이 잘 안 나와서 아쉽다.


노 리플라이가 이리도 인기 있을 줄이야, 오픈 한 시간 반 후에 클릭해서 들어가 봤을 때는 이미 매진이어서 매우 당황했다. 아트홀 맥이 조그마한 소극장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공연장이었기에 나는 표의 수급에 큰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착각이었다. 인터파크 티켓캐스트에 노리플라이를 지정해 둬서 약간 몇 표만 더 나왔던 2차 오픈 공지가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 공연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봤을 때는 페퍼톤스-데이브레이크-정준일-노리플라이 등 이런 뮤지션들의 팬층이 겹치면서도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렇게 광클릭을 해야 공연을 볼 수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서야 알게 됐는데 이전에도 이 분들이 2000석을 매진 시킨 경력이 있다고 한다. 다음에는 나도 광클릭의 전사로 거듭나야겠다.

 

노 리플라이를 알게 된 건 무려 싸이월드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 싸이월드에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출연자들의 곡을 무료로 나누어주는 행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찾아보니 유재하고는 상관없는 싸이월드 단독 행사였다.) 그 때 회기동 단편선도 있었고 했는데 받은 곡 중 하나가 노리플라이의 '고백하는 날' 이었다. 이 노래를 듣고 내가 참 좋아하는 타입으로 노래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이후로 계속 찾아듣게 되었다. 자꾸 착각하는게,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 나왔던 음악들은 그래도 꽤 오래됐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대학교 때 나온 음악들은 그렇게 오래 됐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벌써 노 리플라이도 꽤 많은 시간 동안 활동해왔던 셈이다.

 

들어갔더니 자리 하나하나마다 봉투가 붙어 있는데 이게 무엇인가 싶어 보니 엽서에 친필편지와 사인이 있었다. 나중에 자세히 보니 편지는 친필이 아니라 친필로 쓴 내용을 프린트 했던 것이었고, 사인은 모두 진짜(!)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1600장을 모두 손으로 다 서명했다고 한다.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나. 이런 면면들이 노리플라이가 얼마나 이 공연에 공을 들였고 관객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자리마다 노랫말이 써진 피켓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비밀스럽게 끝나고 무슨 미션이 있다고 써있었으나 시작하기 불과 몇 분 전에 앉아서 그냥 쿨 무시했다.

 

솔직히 김연우나 김범수 콘서트면 모를까 노리플라이는 얼마나 크게크게 높게높게 부르나 보려고 가는 콘서트는 단연코 아니다. 그래서 참 좋아하긴 했었지만 큰 기대를 안 했다. 이런 느낌의 가수들은 대개 녹음한 곡들이 듣기가 더 좋다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초반에 조금 사운드가 깨지는 것 같긴 했지만 그건 잠시였고 라이브로 듣는 그들의 곡은 너무나 듣기가 좋았다.

 

나는 클래식을 잘 모르지만, 클래식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가 녹음된 곡들만 듣고 실제 콘서트에 가서 현악기의 울릴 때 가슴도 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라이브 공연을 들으면 그냥 기타 소리만 들어도 내 마음도 같이 쿵쿵 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바로 노리플라이 공연이 그랬다.

 

1부에는 무대 뒷배경에 MS에서 윈도우즈 배경화면으로 당장 돈주고 산다고 해도 상관 없을 구름이나 여러 자연의 풍경들이 흘러갔고(...) 그렇지만 이런 풍경과 조명이 그들의 곡을 더 돋보이게 하는 느낌이었다. 노래 가사가 아주 평이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슬픈 노래건 즐거운 노래건 콘서트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나도 모르게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힐링이 되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미칠듯이 자리에서 튀어나와 춤을 추게 만들거나 혹은 눈물이 펑펑나게 만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듣고 있으면 참 멍하니 좋아지는 노래들이었다. 녹음된 곡들에는 들리지 않는 매력을 눈으로 보게 된 것 같다.

 

나는 '내가 되었으면'을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노래방에서 내가 나에게 가끔 불러주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곡들-'끝나지 않은 노래, 내가 되었으면'을 불러줘서 참 좋았다. 그래도 나름 앨범을 몇 번 들어본 것 같고 그 때는 저 몇 가지 곡들 빼고는 그다지 좋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다시 시간날 때 다 같이 한 번 들어보면서 콘서트에서 받았던 느낌을 다시 한 번 되살려야겠다.

 

은근히 곡 중간중간 여러 드립들이 많이 나왔는데 권순관의 경우 처음에는 아재개그인가 싶다가 나중에는 교회 오빠 개그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처음에 자리에 붙어있던 엽서에서 성경 구절이 쓰여있을 때부터 알았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30대 초반이라 나름 상큼한 구석이 있는 거라고 해 줄 수 있겠는데 40이 넘어서도 감성이 상큼하다면 노래는 지금과 같은 색깔이어도 큰 문제가 없으나 40이 넘어서도 그런 드립들을 친다면 조금 나는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동아리 오빠 같았으면 격하게 말해줬을 텐데 아쉽다.

 

그리고 공연곡들이 다 끝나고, 역시 피켓에 써 있던 대로 앵콜의 순서에 들어갔는데 끝나지 않은 노래를 다 같이 부르는데 중간에 '어어어~'하는 코러스까지 다 같이 불러서 참 웃겼다. 참으로 어색해하며 노리플라이 멤버들이 나왔는데 아무래도 19일에는 하지 않고 20일이 마지막이라 처음 당해본 (?!) 것 같았다. 처음이 아니라면 정말 연기를 잘 한 거고 말이다. 그 때 신곡 Reply를 들려줬는데 노래가 정말 좋았다! 예전에 알파벳대로 V I C T O R Y 마냥 N O RE PLY를 읽었는데 나름대로 또 오랜만에 해보니까 오글거린다기 보다는 상큼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만석이었으니 수입이 얼마였을까 생각해봤는데 처음에는 세션들도 그렇고 사운드도 그렇고 돈을 꽤나 들였는데 가격도 그리 높지 않아서 이 사람들이 돈 벌려고 한 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막상 정말로 체크해보니 뮤지컬처럼 라이센스를 사오는 것도 아니고 무대제작비 등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 생각보다는 꽤 남았을 것 같긴 한데(...) 이걸로 1년은 못살 것 같다. 제작사 몫을 제하고 순이익이 무려 5000만 원이라고 하더라도 둘이 나누면 2500이니 1년 내내 따뜻하지는 않을 듯. 이렇게 참으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걸 보니 나도 참 마음이 이젠 더 이상 깨끗하지 못하구나 하는 반성을 했다.


끝나고 나서 사진 촬영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인상 깊었던 건 관객들을 배경으로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이 엽서도 그렇고 참 예뻐보였다.

 

그렇지만 이 콘서트에서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무려 '강아지 이야기'에 수록되었던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가 이리도 격렬한 노래였던가 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너에게'가 나올 때 권총질을 해대는 나를 보면서 주위에 커플로 온 남성들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아렸다. 아마 이곳은 그들에게 성시경 콘서트보다 더 힘든 곳이 아니었을까. 

 


마치며


2016년엔 어떤 공연을 봐야할까 또 기대도 되고 통장에 또 지출 내역이 아로새겨질 소리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 배로 두근두근 하다. 일단 전설이 아닌 레전드급으로 불리는 '레베카'를 보려고 계획 중인데, 그 전까지 약간 편견 아닌 편견이 있었는데 차지연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이 이렇게 잘 불러도 되나 싶게 너무 잘 부르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아서 고민이 됐었다. 댄버스 부인이 왜 이렇게 엄청난 사람들만 캐스팅 된 건지;;; (당연히 그럴만 하니까 그런 거지만) 김윤아를 평소에 많이 좋아하지만 뮤지컬은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좀 마음 쓰이게 걱정이 되고 신영숙의 엄청난 연기도 정말 좋을 것 같고, 그런데 저번에 본 차지연의 노래는 너무 감동적이었는데 말이다. 같은 뮤지컬을 두 번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세 번 볼 정도로 그렇게 내가 부자는 아니지 않나 생각하면서 잘 선택해서 한 번만 가자며 마음을 다잡고는 결국 류정한/신영숙 캐스팅으로 보는 것으로 결정했다. 앞으로는 2016년부터는 분기별로 문화생활 내역을 정리해볼 생각이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