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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게 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제목이 독특하고 멋있다던가, 작가가 유명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작품이 유명하거나 등등. 신문이나 TV에서 추천받은 책도 꽤 괜찮을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단지 겉의 모양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석 표지같은 재질에 대담하지만 촌스럽지 않은 빨간색으로 차려입은 이 책은 참 멋있어보였다. 정말 아무것도 써있지 않고 음각으로 움푹들어간 화살표가 갈피를 못잡고 있는 듯하지만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뒷편에서 앞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책은 처음봤다.

 그리고 멋낸 은색글씨로 엮은 부분에 '릴라는 말한다'라고 써있다. 단지 시모가 썼다고 써 있다는데 이 책을 보고 에밀 아자르가 떠올랐다. 이 책은 자기 앞의 생의 모모가 자라서 썼을 법한 안타까운 러브스토리 같았다. 이름도 다시 보니 좀 비슷한 것 같고. 로맹 가리가 한 번 장난을 쳐봤으니 또 한 번 못쳤겠느냐 하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똑같이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이 책은 아무 생각 없이 본다면 실제 책 색깔뿐아니라 내용도 '빨간 책'이다. 이 책은 욕을 먹을 수도 있고 감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책이다. 현상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는 책이고 다르게 본다면 노골적이지만 안타까운 러브 스토리일 것이다.

 이미 하루키의 소설을 봐서 그런지 충격 먹을만한 건 아니었다. 이 책은 꽤 훌륭한 책이었지만 나에겐 지루했다. 작년같으면 침 튀기며 훌륭하다고 했을 책이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입맛에 맞지 않는 맛있는 음식일 뿐이다.

 릴라는 모든 남자들의 환상 그 자체일 것이다. 다른 어떤 여자와도 다르고 특별하게 대해주며 주인공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질투하게도 만든다. 그러나 나는 결코 릴라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몇 명의 여자들도 릴라가 될 수 없다. 나는 릴라만큼 쿨하고 멋진 여자애가 될 자신도 없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환상이란 건 참 즐겁고 도피처가 되는 거지만 이런 환상말고 남자든 여자든 실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다.

 요새는 차라리 내용이 정해져있는 해피엔딩 하나를 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욕하더라도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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