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편안하게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만 때로는 향내나는 연필로 직접 글을 써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다. 마음대로 바쁘게 써지지는 않겠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면서 그 동안 생각해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되돌아 볼 수 있을테니까.

 아마도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처음 접한 건 바로 고등학교 때 문학책 속에서였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열 일곱 소녀보다도 더 고운 감성의 글을 보고 감탄했다.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보노라면 콘크리트 틈새에서 피어난 노오란 민들레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타일리쉬 하지 않고, 세련되지 않아도 이렇게 빛날 수 있구나 하고 안도하게 된다.

 이 얇은 시집에는 놀랍게도 사계절이 들어있었다. 사계절에 대한 탄성과 수줍은 시선이 세상의 험한 논리에 젖어있었던 나를 그 순간만은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게 했다.

 '뭐야? 진달래가 뭐 그렇게 대수야?'

 라고 그리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렇지만 이해인 수녀님의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길 바닥에 있는 작은 낙엽도 특별하게 만들고, 아름다운 것은 그 아름다움을 깊이 느끼게 하는 힘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남들보다 그것들에 대한 수용체가 많은 사람만이 써낼 수 있는 것이다.
 


반응형


,

반응형

 이 책을 산 것은 사실 신입생 때 수강하게 된 교양과목 때문이었다.

  기호학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손을 들었던 나로서는 그 때도 사실은 기호학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 맞다.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말하는 방법'에서 에코가 기호학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단어를 들어본 것에 의의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기호학이 사람들의 호불호에 대한 것을 연구하는 학문을 뜻하는지 알았다.

 내 기대와는 달리 기호학은 정말 우리가 추상적으로 궁금해하는 그 '기호'에 대한 정의와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었다. 이 세상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해석만을 내리던 시기에 기호학이라는 새로운 관점(나에게는 그것은 학문이라기보다는 관점이었다)으로 다가왔다.

 기호학의 겉모습을 맛본 나는 내가 예전에 선생님에게 했던 질문이 생각났다. 그렇다, 초등학교 때 나는 선생님이 당혹해할 만한 질문을 자주하곤 했다. 정확히 생각은 나지 않는데 이런 식의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 왜 하늘은 하늘이라고 부르는 거에요?"

 선생님은 어이 없는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씀하셨다.

 "무슨 이유가 있어? 그럼 네 이름은 왜 ○○이냐? 그냥 그런 거야."

 나는 선생님의 그런 말에 굴복할 수 없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에 젖어있던 나로서는 분명히 어떤 이유가 있는데 선생님이 모르니까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서야 수긍할 수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어떤 사물이 어떤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구나.

 이 개념은 상징이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다. 상징은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사물을 닮은 점은 하나도 없지만 부여하는 행위를 통해 어떤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8이라는 것과 실제 8이라는 의미와는 닮은 점이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일방적으로 편의를 위해서, 혹은 여러 이유에 의해 어떤 모습을 가진 기호가 어떤 사물을 지칭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점에서 언어학, 커뮤니케이션학은 기호학과 일맥상통하고, 기호학이 이러한 개념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반대로 언어학이나 기호를 의미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중반 이후까지도 책의 내용은 기호학의 기본 개념을 쉬운 예시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높이 사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개념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노력이다. 이 책은 쉽게 쓰려고 노력한 책이지만, 이 책은 그렇다고 '쉬운'책은 아니다. 일련의 입문서와 색깔이 다른, 약간 더 쉬운 입문서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쉬운 책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새로운 충격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여러 현상을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관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원인을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러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자세를 얻는 것만으로도, 굳이 반항아처럼 굴지 않아도 그러한 것은 분명히 만족스러운 것이다.

반응형


,

반응형

  나는 TV를 좋아한다.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내 성미 탓도 있지만 사실 TV는 그 이상의 재미가 있다. TV를 재미있어하던 나는 그 어느 날엔가 '매거진 T'라는 놀이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매거진 T의 전경

 루나, 그녀도 모르게 놀이터에 초대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를 인도한 그녀의 공원 - 루나파크


 내가 난데 없이 그 놀이터로 가게 된 까닭은 루나파크에서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루나파크의 공원지기가 되었던 어느 날에 그녀의 다이어리에서 매거진 T 바로가기 라는 문을 발견하기 전까지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게 가게 된 곳에서는 그녀의 일기가 아니라 그녀의 TV에 대한 그림이 펼쳐지고 있었고, 그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CARTOON이라는 동네에서 한참 유영한 후, 오래 지나지 않아 다른 동네에도 마실을 나갔던 것이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동네들은 다음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 번째 동네 - T NEWS


  기존의 일명 '낚시' 느낌으로 가득찬 연예 뉴스에 비해, T NEWS에서 펼쳐지는 뉴스는 다른 모습이다.

 WHAT'S UP
 내가 좋아하는 코너다. 단순한 내용들 밑에 마치 댓글처럼 하나씩 재치 넘치는 의견을 달아놓았다. 무척 신선할 뿐 더러 메인을 중심으로 요새 일어난 있는 일들을 한 번에 알 수 있어서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다 봤을 때의 느낌이 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추측성 기사가 아닌 생각을 볼 수 있다


 NOW
 이름처럼 현재 TV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일어날 일에 대한 기사를 적어놓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단지 '누구누구가 나오고 몇 시에 한다' 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TV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부분을 알아서 제대로 긁어준다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두 번째 동네 - T VIEW

 이제 일어난 일들을 알았으니 다시 '볼'차례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시보기'가 한창이다.

  FOCUS
 연속 기획 다큐멘터리와 겹치는 모습의 코너다. 한 주제만을 몇 번을 나누어서 다루고 있어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코너다. 그렇지만, 매거진 T의 모토가 '놀이터' 인만큼 많이 알 수록 머리가 어지러운 것이 아니라 더욱 즐거워진다.

 리뷰&칼럼
 이 동네에는 보고 나면 익숙한 글들이 많을 텐데, 미디어 ○○하는 곳에서 어쩐 일인지 여기의 글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그 글이 매거진 T에 있던 것이 많다. (사실은 미디어 ○○가 먼저인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이명석의 누가누가 웃겼나' 는 개그 프로그램에만 한정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적 관심에 따라 주제를 선정하고 그에대한 내용을 자유롭게 적어놓았다. '놀이터'이긴 하지만 언제나 달달한 소리만 있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감각적으로 염려되는 점들을 그들의 솜씨로 잘 감싸놓았다. 그리고 특히 재밌는 것은, 이곳에도 '댓글'을 달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상적이기보다는 악플러들의 공간이 되어버린 다른 곳에 비하면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아, 그러시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런 면이 좋지 않은가 싶어요' 풍의 댓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직접 주인장이 몸소 그에 대한 댓글을 달아주기도 한다. 나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이곳이 계속 이랬으면 하는 소망을 한다.

 INSIDE
 이 동네에서는 정말 TV에 관련된 '일' 을 가진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가 있다. 박 PD의 쌈마이 월드의 주인공은 조 PD 같은 가수가 아니라 웃찾사에서 일하는 진짜 'PD' 다. 그도 처음에는 신기하게만 보았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TV 그 뒤의 이야기, 그 이상이다. 자신을 김 카피라고 말한 분은 그냥 말로만 알고 있던 '카피라이터'다. 그녀는 주목할 만한 광고를 잊지 않게 해주고, 요새 광고계에 대한 자그마한 이야기도 보너스로 알려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 번째 동네 - T FUN&STAR


 이제 워밍업 마쳤으니 놀 일만 남았다. TV 안에 사는 스타들과 함께.

 STAR
 나는 이 곳의 인터뷰와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스타에 대한 관심 어린 평가를 좋아한다.  V.I.P에서는 이미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들을 담아놓았고(Very Important Person이 아닌 Very Interesting People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Close Up에는 사람들이 요새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그들의 스타일을 보는 코너도 있다. 현직 패션 잡지 W Korea에서 일하고 계시는 패션 기자의 직업적 안목에서 본 베스트&워스트 드레서를 볼 수 있다. 순결한 19의 주인공들, 순결한 그들의 순결한 인터뷰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스타의 인터뷰에 지친 이들이라면 INTERVIEW에서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도 있다. 혹시 팝적인 리뷰임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귀찮다면, 다섯 명의 카투니스트가 '그려놓은' 감상을 보며 공감하고 때로는 웃을 수도 있다.

 매거진 T는 이외에도 다른 공간이 있지만 일단 주관적인 관점에서 재밌는 공간들만 모았다. 재밌는 매거진 T에 대해 안타까운 감이 있다면 매거진 T의 놀이 대상은 한정되어있다는 것이다. 일본, 미국, 중국의 TV 프로그램까지 얘기하고 있지만, 드라마나 오락 프로그램 같은 인기 프로그램이 주가 된다. 교양 프로그램이나 다른 종류의 프로그램으로는 놀이터를 꾸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꼭 그런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고,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환기시킬 기회도 있을 텐데 매거진 T에서는 사람들이 현재 좋아하는 프로그램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매거진 T는 단순히 자극적인 연예 기사에 질려버린 독자들을 사로잡은 매력이 있으며, 앞으로 더 큰 매력덩어리로 성장할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나는 즐겁게 놀러 갈 것이다. 놀이터에 얼마나 더 멋진 놀이시설이 들어올까 하고 기대하면서.

출처 : 한페이지 단편소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