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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즐거움 - 10점
법정(法頂) 지음/샘터사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 머릿속이 꽤 많이 복잡했던 나는 이 책을 집어들 수 밖에 없었다. 내 마음은 그 때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 곳이 어디인 줄은 알 수 없으나, 나는 계속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저 벗어나고 싶다에서 그쳐버렸지만.

 책을 빌리고 나서 시간이 없어서 아주 조금씩 조금씩 애벌레가 잎을 뜯어먹는 것처럼 읽었다. 어느 날인가 집에 가려고 횡단보도에 서서 한껏 멋을 낸 여자가 비싼 손가방을 뽐내는 것처럼 들고 있었더니 어떤 어르신이 내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홀로 사는 즐거움? 이런 책을 빌렸어?"

 나는 그 이후로 그 어르신을 본 적도 없고 그 때본 것이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는 길을 건너가셔서 손주 녀석에게 주시려는지 큰 소리로 운동화를 하나 사셨다. 그 어르신은 아마도 법정 스님의 책을 읽은 모양이셨나 보다. 물론 이것저것 나의 상상이지만 이 책만큼이나 나의 가슴은 따뜻해졌다.

 법정 스님의 글은 드레싱 하나 뿌리지 않고 채소를 그대로 먹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엇하나 멋내려고, 자랑하려고 하지 않고, 글에서 조차 겸손함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아무나 쓸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 줄 한 줄마다 정성이 있고 정제되어있다.

 가끔 나는 어떤 종교가 되었든간에 수도자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왜냐하면 나는 절대로 수도자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삶에 대한 생각을 한다해도 결국에는 나를 위한, 혹은 나에 대한 삶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나는 같은 이유로, 농사지으며 만족스럽게 살고 있는 사람을 봐도 부럽다. 나는 시골에서 계속 자라왔지만 나는 시골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도시에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력적인 도시인으로 사는 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은 고립과 고독은 다르다고 하셨는데, 내가 그 동안 느껴왔던게 고립이었는지 아니면 고독이었는지 모르겠다.

 또, 자기의 글이 수많은 나무를 쓰러뜨린 종이에 쓸만큼 좋은 글인지 걱정되기도 한다고 하셨다. 나는 종이를 못쓰게 되었다고 해서 함부로 버리거나 한 건 아니지만 그 동안 내가 쓴 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비교하는 건 그렇지만 법정 스님도 그러한데 내 글은 나무들에게 미안한 글이다. 법정 스님의 모든 생각에 동감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명령형으로 되어있지 않다. 이러이러 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무척이나 끈질기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흘러가는대로 있다보면 그렇다는 것을 어느 틈에 알게 되는 책이다.

 나는 이런 것이 좋다. 무엇이든지 직접적인 것은 잘못하면 사람을 찌를 수 있다. 나는 요새 시중에 돌아다니는 실제를 운운하며 팔리는 이런저런 책보다도 이런 책이 훨씬 더 우리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투자해도 전혀 아깝지 않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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