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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정말 백만년만에 임상시험 카테고리에 글을 올리는 것 같다. 이렇게까지 계속 블로깅을 하지 않게 되었던 건 간단하다. 지난 몇 년 간 바빴고, 바빴고, 바빴다. 물론 몇 년 동안 빠짐 없이 그렇게까지 정말 미치도록 바쁘기만 했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 것 같고,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의 헝그리 정신이 없어진 것이 더 합당한 이유인 것 같다.

 

방명록이나 댓글에 '지금 세이지님은 그래서 CRA이신 가요?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가요?'라는 말이 올라올 때마다, 그냥 '제약회사에서 임상시험 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요'라고 대충 둘러댔지만,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밝혀도 괜찮은 시기가 온 것 같아 지금 몇 번째 약속인지는 모르지만 이 블로그를 시작으로 임상시험에 대해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를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일단 세이지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초간단 설명

 

나는 일단 Medical Writer라는 업무를 하고 있다. 사실 나는 CRA가 될 지 알고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막연히 잘 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CRC를 하면서 CRA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어떤 고충이 있는지 그래도 기본 정보 정도는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웬걸. 입사하고나서 내가 갈 길은 CRA와는 좀 많이 다르구나 하면서 야근과 야근과 야근으로 점철된 3개월 가량이 지나가고 나서야 내 Job description의 정식 명칭이 Medical Writer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미래의 직장을 위에 둘러보고 있는 이에게

 

지금 이 블로그를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CRA에 대해 알아가는 단계이거나, 혹은 확고히 CRA를 꿈꾸고 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내가 임상시험 관련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경험했던 바에 따라 되게 재수 없는 얘기를 한 번 해 본다면, 지금 CRA를 꿈꾸고 있다고 하는 사람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CRA가 정말 되고 싶어했다기 보다 단순히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CRA가 더 좋아보인다거나, 혹은 자기 전공에서 택할 수 있는 길 중 여러 옵션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거나 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평생 간호학의 길을 가게 될 줄 알았던 나같은 사람도 갑자기 그 길에서 멀어져서 갈 수 있는 길 중에 그나마 가장 나에게 적합하다고 느껴졌던 길이 임상시험 관련 직무들이고, 다시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엄청나게 고생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일할 기회를 잡고 난 후에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CRA를 비롯한 임상시험 관련 직무들은 대개 심한 work load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만약 지금 당신이 단순하게 근사하다고, 로망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관련 업무를 시작한다면 이상과의 괴리에 무너지고 말테니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 먹은 이상 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재수 없다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나도 현재의 회사에서 진정한 야그너의 삶을 살아보고 나서 삶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뀐 입장에서 드리는 말씀이니 허투루 여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Medical Writer는 무슨 일을 하는가

 

※ 이 설명은 공식 설명이라기 보다는 독자의 이해를 위해 간단히 설명한 글이니 자세한 정보는 따로 찾아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도 이 블로그 내의 임상시험 카테고리를 다 둘러보고도 감이 오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주 쉬운 버전의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실제적으로 임상시험 진행에 대한 책임은 많은 부분 PI(Principal investigator, 연구자)가 지고 있으나, 병원이나 다른 업무를 하면서 임상시험 관련 업무까지 진행하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에 CRC (Clinical Research Coordinator)가 실제적으로 임상시험 관련한 많은 부분을 진행한다. 환자 visit chedule 관리, 환자 등록, 가장 중요한 환자 정보를 CRF (Case Report Form, 증례 기록지)에 기록하는 일 등을 한다. 이런 정보를 CRF에 기재하고 나면 CRA가 Source document (Chart 그 외에 laboratory 결과지 등)과 CRF간 정보가 맞게 기술되었는지, 임상 Protocol(임상시험계획서)에 따라 임상시험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mornitoring 하는 업무를 한다. 그 외에도 많은 업무가 있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CRA는 임상시험이 잘 진행 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모니터링 하는 업무를 한다.

 

Medical Writer의 경우는 이렇게 임상시험이 진행될 수 있도록 임상시험 Protocol을 쓰고, 필요 시에 Protocol을 변경하고, 임상이 완료 되고나면 그 결과에 대한 CSR(Clinical Study Report, 임상결과보고서)를 작성하고, 허가 기관에 CTD(Clinical Trial Document) 및 임상시험 관련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한다.

 

이것 또한 간단히 요약하자면, 임상시험의 시작 및 종료, 그리고 허가 과정에서 쓰이는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업무의 특성상 임상시험의 시작, 과정, 종료, 허가에 대한 모든 과정에 발을 담구었고 경험하게 되어서 임상시험의 전체 범위를 이해하기에 좋은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자기 최면일 지는 몰라도 이 업무에 많이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말했듯이 위에 기술한 것 또한 내가 진행했던 업무의 매우 일부분이고 자세한 설명은 내 성격 탓인지 내가 진행했던 업무에 대해서는 모두 별도의 포스팅으로 세세히 설명해야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블로깅할 게 많다고 계속 투덜댔던 게 이런 이유에서다. 내가 임상시험 관련해서 취직하려고 시작했던 블로그가 이 블로그인데, 아직도 임상시험 관련해서 상세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블로그는 거의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의무감은 의무감 대로 있고 괜히 포스팅해야 한다고 하면서 마음이 찔리는 상태였다.

 

 

Medical Writer의 전망

 

내 직무에 대해서 매우 만족하지만 당장 '모두들 Medical Writer를 하십시오'라고 할 수 없는 게, Medical Writer는 임상시험을 시작하고 종료하는 주체가 될 만한 회사가 있을 때 있는 직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약을 허가 받으려고 계속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는 회사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또 Protocol이나 임상시험 문서를 외부 업체에 맡겨서 진행해서 그 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국내 제약회사도 많고 외자사의 경우 해당 회사의 Medical Writer는 대개 해외 본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국내 제약회사의 일부, 국내/외자계 CRO의 일부에만 Medical Writer를 두고 있다. 따라서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직무를 선택하기도 힘들고, 수요가 많지도 않다.

 

반대로 CRA의 경우는 국내 제약회사에도 기회가 많고 외자계의 경우는 본사에서 작성한 문서를 가져와서 임상시험을 진행하면서 직접 모니터링하는 경우가 꽤 많은 편이고, CRO에서도 국내 제약회사와 외자계에서 위탁받은 많은 임상시험을 모니터링 하기 위해서는 CRA가 가장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을 계획이라면 CRA가 더 적절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CRA인 줄 알고 갔다가 어쩌다보니 Medical Writer의 길로 들어서버렸기 때문에, Medical Writer의 참맛을 알기 위해서는 외국 본사(?!)가 적절할 수도 있는, 그런 이전에 예상하지 않은 길에 와 있다. 경험해 본 결과 외자계 CRO에서도 정말 중요한 문서는 외국 본사에서 쓴다는 불편한 진실.

 

따라서 앞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니 나도 모르게 계속 포장을 해대더라도, '그렇다면 나는 Medical Writer가 되겠어!'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는 게 좋다. 가기도 힘들고, 가고 나서 그렇게 쉬운 길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 정말 슬픈 일이지만 임상시험 관련된 모든 직종이 신입은 잘 뽑지 않고,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마무시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임상시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거나, 혹은 정말 어떤 직종으로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5년 전의 나를 돕는 것과 같은 마음이 되어 성심성의껏 답변 드리도록 하겠으므로 방명록에 글을 부탁 드린다.

 

- 다만 몇 년간 거의 빼놓지 않고 두 달, 세 달 후라도 답변을 내가 아는 선에서는 최대한 도와 드렸는데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전혀 하지 않고 입을 싹-닦는 사람이 간혹 있다. 4년 동안 좀 더 깊은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마음이 많이 모나서 그런 경우 마음에 조금 많이 담아 둘 것 같으니 고맙다고 언급이라도 하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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